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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동화속 은빛파도
봄여름가을겨울 동화속 은빛파도23.02.21

제주도 돌하루방이 생겨나고 유래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주도 곳곳마다 돌하루방이 세워져 있는대요.

제주도에 돌하루방을 누가 어떻게 생겨나고 유래되었는지 자세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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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9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이 만들어진 것은 언제일까? 효종 4년(1653) 이원진이 편찬한 『탐라지』에 “옹중석(돌하르방)은 제주읍의 성 동·서·남 삼문 밖에 있었고, 영조 30년(1754) 김몽규가 세웠으나, 삼문이 헐림으로 인하여 2기는 관덕정 앞에, 2기는 삼성사 입구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김몽규가 돌하르방을 새로 만들어 세웠는지 본래 있었던 것을 성문 앞으로 옮겨다 세운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다만 돌하르방이 1754년 무렵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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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은 명실 상부한 제주도의 상징물이죠. 원래는 우석목이라고 불리던 것이, 근대에 들어와 어린이들이 돌하르방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널리 퍼져 문화재로 지정할때 돌하르방으로 정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돌하르방의 유래는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몽골로부터 전파되었다는 북방기원설이 있는데, 몽골의 훈촐로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남태평양에 있는 발리섬의 석상 문화가 해류를 타고 제주도까지 전파되었다는 남방기원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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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김석익 교수입니다.

    영조 30년(1754년) 당시 제주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옹중석을 세세웠다고 합니다.


    '옹중'이란 중국 진시황 때 사람으로 완옹중을 지칭하며 그는 남해 거인으로 그의 힘은 1,000명의 기운에 달했다고합니다. 진시황제는 완옹중이를 북방 침략자를 토벌하여 격퇴시키도록 하였습니다

    돌하르방이란 말은 근래에 생긴 명칭이며 원래는 '옹중석'으로 불렸다고합니다. '돌하르방'이란 명칭은 할아버지라는 제주도 방언인 '하르방'에 '돌'이 앞에 붙은 낱말로 1971년 문화재 이름으로 등재되에 지금까지 부르게 되었다고합니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본 결과 예로부터 제주도에서 있었던 돌 문화에 몽골 돌 문화가 들어와서 '돌하르방'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재창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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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의 유래는 제주도 자생설과 남방설이 있고 몽골 북방에서 들어온 북방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돌 문화에 몽골 돌 문화가 들어와 돌하르방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재창조된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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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제주도 돌하루방은 제주도 전통 건축 양식 중 하나로, 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모양의 석재로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돌하루방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지만, 정확한 역사적 배경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한 가설에 따르면, 돌하루방은 조선 시대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주민들이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제주도의 풍수지리학적인 이론에 따라,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생태 체계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도 합니다.

    다른 가설에 따르면, 돌하루방은 고대 제주 사람들이 추억과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이론에 따르면,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지방 토지를 개간하기 위해 평야를 만들 때 돌을 제거하면서 남은 돌들을 재활용한 건축 양식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돌하루방의 유래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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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석정숙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김성익 교수의 탐라기년 인데요

    당시 제주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옹중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52기 돌하르방은 그때 제주목, 대정진, 정의진 등 3개 음성의 성문앞에

    세웠다고 합니다. 옹중이란 중국 진시황 때 사람으로 완옹중을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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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은 영조 30년(1754년) 당시 제주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옹중석을 세운 것이 유래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52기 돌하르방은 그때 제주목, 대정진, 정의진 등 3개 음성의 성문 앞에 세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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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돌로 된 전통적인 주택 양식으로, 제주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중 하나입니다. 이 돌하루방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는 지리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모두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먼저 지리적인 요인으로는, 제주도는 기후가 극한으로 변화하는 지역이라는 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여름에는 더운 기후와 풍부한 강수량, 겨울에는 추운 기후와 거의 없는 강수량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경우는 여름과 겨울 모두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많아, 이에 따라 주택의 건축 양식도 맞추어져야 했습니다.

    또한, 사회적인 요인으로는, 제주도가 고립된 지역이라는 점과 농경사회로 형성된 것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제주도는 본토와는 떨어져 있으며, 당시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에 자연환경에 적응한 주택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제주도 주민들은 농경사회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에 따라 농경을 위해 사용되는 여러 가지 도구와 작물 등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화적인 요인으로는, 신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신앙을 중요시하는 지역이었으며, 돌하루방은 예로부터 제주도 주민들이 믿는 제주도 신앙인 '토속신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토속신앙은 선조를 숭배하는 신앙으로, 주택 안에 선조를 모시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돌하루방의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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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이란 말에서 하르방이란 제주 방언으로 할아버지를 의미 합니다 즉 돌로 만들어진 할아버지라 해서 돌하르방이라 부르는데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제주의 자연환경상 비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돌로 만들었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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