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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23

사할린은 언제 러시아의 땅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도상으로 살리는 일본 북부에서 이어지는듯한 느낌의 영토 인데요 이런 사할린이 언제 처음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는지 그 역사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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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00년대 중반, 알렉산드르 2세에 의해 지금의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주변 지역과

    사할린 섬이 러시아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사할린 섬의 일부와 쿠릴 열도의 여러 섬들을 일본이 빼앗아간 셈이죠.

    하지만 또다시 러시아가 빼앗아 갔죠.

    윗 분들이 말씀하신대로 제 2차 세계대전의 일본 패배로 소련이 그 영토를 다시 돌려받기를 요구했으며

    결국 다시 소련의 영토로 돌아온 겁니다.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해선 러시아와 일본의 분쟁이 심하죠.

    특히 쿠릴 열도의 4개 섬 (보통 북방영토라 부릅니다) 을 두고 외교전이 치열한데요.

    원래 주인은 러시아 였다는 걸 꼭 말해두고 싶군요.

    일본의 논리도 그럴 듯은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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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3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러시아 연방공화국 사할린주에 속하는 섬. 면적은 8만 7,100㎢, 인구는 65만 5천 명, 수도는 유즈노사할린스크. 일본에서는 가라후토(樺太)라고 부른다. 일본 훗카이도(北海島)와는 소야(宗谷)해협을, 소련 본토와는 타타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섬으로, 삼림이 울창하고 남부는 산악지대이며, 유전이 있다.


    1860년경 사할린은 <러시아인과 일본인이 섞여 사는 땅>으로 되어 러시아·일본 사이에 영유권 다툼이 있다가, 1875년 사할린·지시마(千島) 교환조약으로 온 섬이 러시아령으로 들어갔다. 러·일전쟁 이후 1905년의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북위 50도 이남이 일본에 할양되었으나, 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소련군이 남사할린을 점령, 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해 일본은 남사할린의 모든 권리·청구권을 포기했다. 1938~45년 사이 일제치하에서 강제징용당해 이 지역에 이주한 한국인은 약 15만 명에 달하며, 이들은 탄광과 항만건설 등에 혹독한 강제노동을 당했지만, 일본이 패전하고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4만여 동포들이 일본과 러시아의 비인도적인 처사로 아직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출처 : 한국근현대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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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06년 러시아의 통상 요구를 에도 막부가 거부하자 러시아 해군은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 등지에 위치한 일본인 거류지를 습격하여 파괴한 후 사할린을 러시아령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07년 에도 막부가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일본령으로 선포했으며 그러한 선언의 일환으로 1809년에 일본의 탐험가인 마미야 린조가 막부의 지원 하에 지금의 타타르 해협까지 탐사했고 사할린이 섬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결국 러시아와 일본 간 사할린과 쿠릴을 둘러 싼 신경전 끝에 1855년 러일화친조약(일본명 시모다 조약)이 체결되었고 조약에 따라 사할린은 양국의 공동 관할구역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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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위치한 섬 사할린은 원래 토착민들이 거주하다가 나중에는 몽골 제국, 중국 청나라, 러시아 제국 등 여러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1855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체결된 시모다 조약으로 사할린은 분쟁지역으로 인정되었고, 결국 1905년 러일전쟁 이후 두 나라 사이에 분단되어 남쪽은 일본이, 북쪽은 러시아가 되었습니다. 1945년 소련이 사할린 섬 전체를 되찾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만주와 쿠릴 열도를 침공한 이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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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할린의 주권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의 첫 번째 회담은 1855년 시모다 조약이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미국 페리 제독의 압력으로 1854년 3월 미일 우호 조약에 서명하여 오랜 쇄국 정책을 포기하고 전 세계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때 러시아와 시모다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때 우루프 섬 북쪽의 쿠릴 열도는 러시아 영토로 확정되었지만 사할린 섬은 러시아와 일본의 공동 관할하에 두기로 합의했습니다.

    러시아 극동 총독 무라비요프는 사할린을 일본과 공유한다는 생각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는 사할린에 농장을 건설하고 포로들을 이주시키고 정착촌을 세웠습니다. 무라비요프는 사할린이 러시아 영토라고 주장하며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듣지 않았습니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일본어: 가라후토-치시마 교환 조약)에서 일본은 쿠릴 열도를 받는 대가로 사할린 전체를 러시아에 양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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