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 궁 내에 뒷간이 따로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영화 광해를 보면 왕이 볼일을 볼때 신하들이 요강을 가지고 옵니다.

근데 궁 내에는 수많은 신하들이 살고 있었을텐데, 이들을 위한 뒷간은 따로 있었나요?

경복궁에 놀러 갔을 때 뒷간 관련 된 장소나 얘기를 못들어서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궐에 뒷간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경복궁에는 뒷간이 28군데나 있었으며, 그 규모를 모두 합하면 51.5간이었다고합니다. 동궐에는 21군데, 36간 정도의 뒷간이 있었으며, 뒷간은 대개 1간이었으나, 큰 것은 7간에 달했다고합니다. 한 간 짜리 집이란 네 개의 기둥으로 된 가장 작은 건물로써 주택으로서 가장 작은 것을 흔히 초가 삼간이라 하는데 비해 뒷간이 7간이라면 화장실치고는 제법 큰 건물이었다는것을 알 수있습니다. 궁궐의 뒷간은 뚝 떨어진 별채로 짓거나, 본채를 둘러싸고 있는 행각의 일부에 설치하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궐의 뒷간

      우리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민가에도 뒷간은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다. '뒷간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듯이 평민 주택에서는 뒷간을 본채에서 멀리 떨어진 마당가에 지었다. 냄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또 위생상의 필요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터가 널찍하고 남녀간의 내외 구별이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평민 주택에서는 그럴 수 있었지만, 남녀의 활동 공간이 엄격히 구별되어 있는 양반 주택, 특히 도회지의 양반주택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양반 주택에서는 여성 전용의 안 뒷간과 남성 전용의 바깥 뒷간을 따로 두었다. 안 뒷간은 주로 안채에서 떨어진 눈에 안 띄는 곳, 안 행랑의 일부나 또는 독립된 건물로 두었고, 바깥 뒷간은 사랑체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 행랑이나 대문 밖에 따로 두었다. 바깥 뒷간은 주인과 손님이 쓰는 뒷간과 아랫사람들이 쓰는 뒷간으로 구분하여 두 개를 두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