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임시정부는 국민대표회의를 열어 그 동안의 독립 운동을 반성하고, 향후 독립 투쟁의 방략과 임시정부의 방향을 놓고 토론하였습니다. 특히 애초에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둔 것이 외교 투쟁에 무게를 두었지만 그 성과가 미흡하고, 외교 투쟁을 주도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국제연맹위임통치 청원에 대한 비판으로 새로운 투쟁 방략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신채호 등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한 인사들은 무장 투쟁에 용이한 곳에 임시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창조론, 하지만 안창호 등은 외교투쟁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임시정부의 개조를 주장하며 개조론을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