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신 정권의 수반인 최우(崔瑀)는 반대 의견을 누르고 1232년(고종 19) 7월에 강화천도를 단행했으며, 이에 앞서 6월에는 살례탑이 고려에 설치했던 다루 가치들을 살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려의 대응은 몽골에 또 다른 빌미를 제공, 몽골의 2차 침입을 불러왔습니다. 그해 8월에 몽골은 개경으로의 환도와 고종[고려](高宗)과 최우의 몽골 입조 혹은 출륙을 요구하면서 살례탑을 수장으로 한 2차 침입을 감행했는데 이때의 몽골군은 같은 해 12월, 살례탑이 처인성(處仁城)에서 김윤후(金允侯)의 화살에 맞아 사망함에 따라 철군 하게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