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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좀합시다
그만좀합시다23.12.26

에펠탑은 어떻게 파리의 명소가 되었나요?

만들어졌다 당시에 흉물스러운 건축물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에펠탑은 어떻게해서 현재처럼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명소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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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넉넉한거위288입니다.

    위에 분이 넘 자세히 잘 설명해 주셨네요

    그이후로도 몇년주기로 에펠탑 색을 바꿔칠해서 멀리서도

    다양한 에펠탑을 볼려고 주위의 예술가들이 몰려들어서

    지금까지 유지가 되고 유명해진거라고 하네요


  • 안녕하세요. 봄여름가을겨울 동화속 은빛파도입니다.

    프랑스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독일에게 패한 치욕을 만회하고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1889 파리 엑스포에 전시할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특히 영국이 자랑하는 최신 건물이었던 수정궁과 세인트 판크라스역을 의식하여 기둥간의 거리를 115m로 늘린

    기계관(판크라스 역은 73m)과 300m 높이의 에펠 탑을 선보였으며, 일종의 기술을 과시하는 용도였기 때문에 원래는 20년간

    설치했다가 해체할 예정이었습니다. 사실 건축적인 의의는 기계관이 더 크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대중이 느끼는 시각적인 충격은

    에펠 탑이 압도적으로 뛰어났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에펠 탑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마천루가 즐비한 오늘날에는 잘 느끼기 어렵지만, 약 169m의 구조물인 워싱턴 기념탑, 161m의 건축물인 울름 대성당이 가장 높던

    시절에 등장한 300m의 타워란 충격적인 광경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인간의 구조물의 고도가 '갑자기' 올라간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철을 가지고도 고전적 건물을 모방하기 바뻤던 시대에 철골을 당당하게 드러낸 에펠 탑의 위용은 마치 새로운 신 건축의 시대를

    선언하는 듯 하였으며, 이는 에펠 같이 토목 분야에서 활동하던 구조 공학자들이 일반적인 건축가보다 산업시대의 새로운 재료들을 더

    빠르게 활용했기에 가능했던 진보입니다.

    에펠 탑은 건설비가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그 대부분을 에펠이 냈고 대신 20년간 독점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욕먹는 걸 참아가며 만든

    보람이 있어서, 에펠의 예상대로 3년 만에 투자비를 다 뽑아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원래는 20년 후에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그냥

    철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에펠의 설득과 송신탑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어 한 프랑스 육군 고위층의 결정으로 살아남게 되었고,

    그렇게 쭉 있다 보니 결국엔 어느덧 파리 시는 물론 프랑스 전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