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힘드셨겠습니다. 검사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증상은 분명히 있는 상황, 그리고 주변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이 겹치면 정말 지치실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증상들, 특히 땅이 꺼지는 느낌과 두통은 뇌전증 자체의 후유증이 아니라 발작 간 증상(interictal symptom)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뇌전증 환자에서 발작이 없는 사이에도 뇌의 과흥분성이 지속되거나, 복용 중인 항뇌전증 약물의 영향으로 두통, 어지러움, 인지 변화 등이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검사가 정상으로 나오는 것은 이런 기능적 문제가 구조적 이상 없이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추가로 고려해볼 수 있는 검사와 접근 방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뇌파 검사가 정상이었다고 하셨는데, 일반 뇌파는 검사 당시의 순간만 반영합니다. 24시간 활동 뇌파 검사(ambulatory EEG)나 수면 뇌파를 시행하면 평소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대의 뇌 활동을 더 넓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항뇌전증 약물 혈중 농도 검사를 통해 현재 복용량이 적절한 범위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약 농도가 너무 높으면 두통과 어지러움이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고, 너무 낮으면 준임상적 발작 활동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두통의 성격에 따라 편두통과의 동반 여부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뇌전증과 편두통은 신경학적으로 공통된 흥분성 기전을 공유하여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알려져 있으며, 이 경우 두통 자체에 대한 별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담당 신경과 선생님께 위 내용을 바탕으로 24시간 뇌파 검사와 약물 혈중 농도 확인을 요청해보시고, 증상 일지를 작성해서 두통과 어지러움이 하루 중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지 기록해 가시면 진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꾀병이 아니라 명확히 설명 가능한 기전이 있는 증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