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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11.20

지채문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려거란전쟁에 지채문 장군에 대한 사람이 나오데요, 맹장이었다고 이야기하던데 어떠한 사람인지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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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채문(? ∼ 1031년)은 고려시대의 무신으로, 현종 재위기에 활약한 인물입니다. 1011년(현종 2년) 거란의 제2차 침입 당시 왕을 호위하며 나주까지 무사히 호종한 공으로 전 30결을 받았으며, 1026년(현종 17년)에는 상장군 우복야에 올랐습니다. 1031년(덕종 즉위년)에는 현종 때 남행을 호종한 공으로 1등 공신으로 추록되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1.2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제8대 현종 치세때의 군인 및 관료로서 봉산 지씨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어린 시절의 생애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지채문 ( 964년 ~ 1026년)은 고려의 무신이라고 합니다.

    본관은 봉주, 자는 호간. 상장군 우복야에 오르고, 1등공신으로 추록되었습니. 생애 입신 979년(경종 4년)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맹활약하여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거란(요나라)의 제6대 황제인 성종 야율융서의 제2차 침공 전쟁부터였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전기의 무신으로 봉주 지씨의 시조입니다.

    1010년 중낭장이 되어 거란이 침입하자 화주를 중심으로 동북 방면을 방비하다 강조가 패전하자 서경을 구원하기 위해 시어사 최창과 더불어 강덕진에 진을 쳤으며 이때 거란인 유경이 강조의 패전 때 포로가 되었던 노의를 앞세우고 서경에 이르러 항복을 권했는데 부유수 원종석 등이 이에 응하려 하자 원종석의 항서를 가지고 가는 노의를 죽이고 상서를 빼앗아 불태웠습니다.

    동북면도순검사 탁사정과 합세해 서경에 들어가 거란군을 물리치나 계속되는 거란군의 공격으로 서경이 포위되자 탁사정은 도망하고 지채문도 개경으로 빠져나와 서경의 전황을 알렸습니다. 이에 신하들이 항복하기를 논의하나 강감찬은 홀로 왕의 남행을 주장해 지채문이 이부시랑 채충순 등과 금군 50여명을 거느리고 왕을 호종했습니다.

    적성현 단조역에 이르렀을 때 무졸 견영이 역인과 더불어 행궁을 범하려고 하는 것을 저지, 창화현에서는 현리가 난을 일으키자 채충순, 주저 등과 함께 왕을 피신시켰습니다.

    이듬해 광주에서는 길이 어긋난 왕후를 요탄역에서 찾았고 이어 양성을 지나 여양현에 이르렀을 때 왕에게 현안지 등 16명에게 중윤을 제수하도록 해 민심을 수습하도록 했습니다.

    삼례에서는 전주절도사 조용겸이 왕을 전주에 모셔놓고 호령을 하자 여러 무장들이 이를 죽이려 하는 것을 중지시키고 전주로 돌려보냈고 이렇게 여러 차례 왕의 신변을 보호하면서 나주까지 무사히 호종, 이듬해 거란이 물러난 뒤 공주에서 호종의 공으로 전 30결을 받았고 1016년 무직으로서 우상시가 된 뒤 1026년 상장군 우복야에 오르며, 1031년 현종 때 남행을 호종한 공으로 1등 공신으로 추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