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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3.22

삼국지 동탁은 실제로 똑똑한 군주였나요?

책이나 게임같은 곳에서 동탁을 접하면 굉장히 난폭하고 멍청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실제였다면 궁중을 장악할 실력으로 봤을 때 꽤 똑똑한 인물인 것 같은데 정사에서는 어떻게 평가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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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2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후한 말의 군벌, 정치가입니다.
    삼국지의 시작을 연 악인의 대명사면서 동시에 근대까지 모든 중국 군벌들의 원형입니다. 망탁조의의 멤버 중 하나였으며 장양, 하진과 더불어 삼국지연의의 초반 주요 인물입니다. 낙양으로 쳐들어와 황제 소제를 폐위시키고 꼭두각시 헌제를 옹립해 국정을 농단했습니다. 반동탁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수도인 낙양을 불태우고 헌제를 데리고 장안을 새 도읍으로 삼았습니다. 자중지란에 빠진 연합군이 와해되면서 기사회생하는 듯 했으나 192년 왕윤과 여포에게 살해됩니다.
    현대 중국어로는 둥줘(Dong Zhuo)로 읽지만, 후한 당시에는 상고한어로 대략 tongʔ trewk(똥 뜨레욱), toongʔ rteewg(똥 르떼욱) 정도로 읽혔을 것입니다.

    양주 농서 출신. 거칠고 지략이 있었으며, 덩치가 크고 대단한 완력을 가졌고 궁마술에 능했는데 이 때문인지 그는 화살집 두 개를 차고 좌우 자유자재로 활을 쏠 수 있었다고 한다.
    젊어서부터 호방하고 보스 기질이 있어 패거리를 이끌고 다녔고 강족의 유력자들과도 친분을 맺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 때 강족 무리가 찾아오자 밭을 갈던 소를 잡아서 연회를 베풀었기에 강족들이 감격했다는 일화도 있다.
    환제 말엽에 우림랑으로 천거되어 병주에서 전공을 세워 병주자사가 되었다. 그리고 포상으로 받은 전리품들을 모두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인심 장악에 뛰어난 기질을 가졌다.
    이후로도 동탁은 북방 이민족 토벌에 자주 전과를 올려 승진을 거듭했으며 하동 태수로 재임한다.

    출처: 나무위키 동탁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당시대 이전까지 거의 약 400년 가까이 지속된 삼국시대-오호십육국시대- 남죽조 시대의 시초인 악인이자 사실상 만악의 근원이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게 한 실질적 장본인이라고 할수 있으며 제갈량과 노숙 등의 천하삼분지계를 보면 동탁이 워낙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대 동탁은 이미 악으로 규정되어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동탁은 후한 시기 삼국인물 중의 하나로, 후한의 대장군이자 대소주자입니다. 그는 후한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등 국가를 위해 충성스럽게 일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동탁은 후한의 대소주자로서 국왕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권력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그가 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것으로 비판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한 삼국지에서는 동탁이 권력을 쥐고자 했지만, 그의 정치적인 소양이 미약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동탁은 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부정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후한의 군사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 충성스럽게 일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동탁이 궁중을 장악할 실력이 있었고 흉노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는 점에서 똑똑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동탁이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역적으로 취급되고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악인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멍청하고 난폭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질문에 명확히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ㅜㅜ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탁은 중국 삼국시대의 위대한 장수로서, 세 번에 걸쳐서 자신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첫 번째 재임 시기에는 중앙집권국가를 구축하고, 농경지조를 개선하며, 민생을 보살피는 등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두 번째 재임 시기에는 군사적으로 매우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서 삼국 중에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재임 시기에는 법률을 개혁하고, 국가의 행정 체계를 개선하는 등의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여 국가의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통탁이 똑똑한 군주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뛰어난 전략가였고, 인재를 발굴해내는 능력이 뛰어나서 그가 다스리는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가 군사적으로 무력한 대우를 취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동맹국을 배신하는 등의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비판합니다.


    따라서, 통탁이 똑똑한 군주였느냐 아니냐는 평가가 분분하며, 그가 효과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다스렸다는 점은 인정받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