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31대 공민왕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개혁군주라는 점입니다. 원나라의 부마로 노국공주와의 사랑 요승 신돈의 등용 등 드라마틱한 인물입니다. 공민왕은 즉위하자 마자 번발을 풀어헤치고 원나라 옷을 벗는 등 과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영토회복과 국권회복운동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원나라 순제의 두번째 황후(기황후)에게는 기식 기철 기원 기주 기륜 등 여러 형제가 있었고 이들은 기황후를 등에 업고 온갖 만행과 수탈을 자행했습니다. 원의 쇠락에 용기를 얻은 공민왕은 역모를 꾀하러 했던 기철일당들을 연회를 핑계로 궁궐에 들게한 뒤 철퇴로 때려죽입니다. 원의 기황후는 자신의 일족들이 죽임을 당한 것에 대해 복수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는데 마침 최유가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덕흥군을 옹립할 생각을 건의하자 기황후는 원 순제를 움직여 덕흥군을 고려 왕으로 추인을 받습니다. 최유가 공격해오자 최영과 이성계를 보내 물리쳤고 최유는 호시탐탐 공격해왔으나 그때마다 격퇴당했고 원나라는 더이상 고려와의 갈등을 원하지 않아 공민왕을 복위시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민왕의 자신감 입니다. 당시 공민왕이 기철 일당을 숙청하는 것은 원나라와의 전쟁을 의미하는데 당시 명나라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국제 정세를 고려해 볼 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공민왕은 기철 일당 숙청을 감행하고 빼앗긴 영토까지 되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