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건물은 어떤 방식으로 철거됐나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통치를 위해 일본이 지은 우리역사의 뼈아픈 건축물인데요. 광복 이후에도 정부 청사와 국회의사당으로도 쓰였다는데, 어떤 일을 계기로 어떤 방식으로 철거됐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1993년 8월 9일 김영삼 대통령은 민족정기 회복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해체하고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을 국책사업으로 건립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광복 50주년 경축식에서 중앙돔의 해체를 시작으로 70년간 우리 땅에 버티고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철거에 들어갔습니다. 1996년 11월 13일 조선총독부 건물의 지상 부분 철거가 완료되었고, 1998년 8월 8일 독립기념관은 중앙돔과 건축부재로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을 개원하여 일반에 공개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총독부 청사는 서울의 경복궁에 위치하고있었는데 광복 이후에도 정부 중앙 청사로 이용되었다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고, 1995년 일재 잔재를 제거하는 의미로 철거되었습니다.
처음 해체가 논의된 것은 6.25전쟁 중 1.4 후퇴 이후에 막 서울을 수복한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의 상징을 서울의 심장부에 두는 것이 말이 되냐며 철거를 지시했고 당시 이 계획을 검토한 사람은 육군 공병감 엄홍섭과 육군 참모총장 백선엽이었는데 당시 공병대에서는 이렇게 막대한 석재를 나를 장비를 도무지 못 구하겠다고 난색을 표했고 표선엽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군에게 불도저 4대를 빌려오긴 했으나 중장비는 그게 고작이었고 기껏해야 지게꾼들이나 동원할수 있었습니다.
해체할 능력은 아예 없고 폭파라도 시켜 억지로 없앤다 해도 무거운 석재를 나를 능력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당시 모든 정부 재정과 수입 물자를 미국 원조에 의존할때였고 운전수는 교육시킨다 해도 불도저를 빌려와야 하고 트럭도 빌려와야 하고 기름도 얻어와야 하고 공구와 작업복도 얻어야 하며, 삼시세끼 급식도 얻어야 하는, 글자 그대로 한국 정부가 동원할수 있는게 국민의 맨몸뿐이고 이를 빼고 모든게 미국 원조이다 보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서울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큰 건물을 부수는데 예산을 쓰고 정부 청사로 쓸 새건물을 짓는것이 낭비라 포기하게 됩니다.
철거는 미뤄지나 2공화국 시절까지도 공식 정부 청사로 쓰지 않고 방치했고 1962년 재개관된 것도 전적으로 중앙청 건물을 개보수해서 끄면 비용을 아낄수 있다는 이유였고 이후 1970년대 까지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했다가 1982년 과천으로 정부 기능이 부분 이전하는 김에 이때까지도 정부 청사로 쓰였던 조선총독부 청사도 철거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박물관으로 쓰이게 됩니다.
민주화 이후 경복궁 복원 계획이 확정되며 다시 중앙청 건물 철거 논의가 나왔고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중앙청 철거를 지시, 이때 일본 근대 건축사 연구단체 메이지 건축 연구회가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긴 하지만 동아시아 근대 건축물 역사상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고 하며 보존을 촉구했는데 오히려 이 사실이 공분을 사 한국의 여론이 악화되어 철거 찬성 여론이 높아졌으나 노태우 정부 비서진이 바뀌면서 철거는 또 다시 유야무야 됩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후 다시 해체 계획이 입안되었고 이 해체 결정에도 많은 국내외적인 논쟁이 일어났으나 결국 해체가 결정됩니다.
1995년 3월 1일 오전 10시 정부는 구 총독부 앞 광장에서 광복 50주년 3.1절 기념문화 축제를 열어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옛 총독부 건물을 헐어낸다고 선호, 이 날 선포식에서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경과 보고를 통해 오늘 삼일절을 조선통독부 건물 철거의 시발점으로 삼는다고 천명했고 이어 8월 15일까지 철거 실측 작업을 마친 뒤 광복절을 기해 총독부 건물 중앙돔의 첨탑을 끊어 낸 뒤 내년 초까지 철거를 완료하겠다고 했으며 경복궁 복원 계획도 같이 천명했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 오전 9시 옛 총독부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장에서 중앙돔 첨탑 분리에 앞서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은 해방 50년만에 이뤄지는 일제 상징의 제거를 호국 영령들에게 고하는 고유문을 낭독했고 9시 21분 기중기가 첨탑에 구멍을 뚫어 만든 고리에 1인치 굵기의 쇠밧줄 5개를 걸고 서서히 첨탑을 들어올렸고 첨탑 중 11.4톤짜리 첨탑 윗부분이 먼저 올려졌습니다.
첨탑철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은 지하 보관소로 옮겼다가 중앙청 바로 옆에 있는 구 국립중앙박물관 사회교육관 건물로 이전되었고 이후 1996년 초부터 차근차근 압괘 및 줄톱 공법으로 절단,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철거해 나가 그해 말인 11월 13일 마지막 벽면을 끝으로 철거가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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