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 졌고 전파가 되었나요?
택견이라는 무술은 우리나라의 전통 무술이 맞나요?
어떠한 이유로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전파 되엇나요?
처음 만드신 분이 누구인가요??? 어느 시대에 만들어졌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정조 22년(1798) 이만영(李晩永)이 집필한 《재물보(才物譜)》에 있는"수박(手搏)은 변(卞)이라고 하고 각력(角力)은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탁견이라 한다." 하는 구절이 택견이 최초로 언급된 사료이다. 19세기 민속화에 씨름하는 옆에서 택견하는 민초들의 모습이 나오고 20세기 초 탁견희라는 한시가 존재하는 등 한국의 기록물에서 '택견' 관련 기록이 꾸준히 나온다. 한편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 '덕견이' 라는 무술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조선상고사》 외에는 덕견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사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어 '덕견이'가 구한말 택견을 가리키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고려사부터 시작해 국내 역사서에서 흔히 발견되는 '수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무술계 단체별로 여러 의견이 있다. 문화재 지정 보유자가 소속된 한국택견협회 측에서는 위의 《재물보》를 인용해 수박이 택견으로 변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택견을 나타내는 탁견희 이전에 가장 비슷한 기록상의 예시로 수박을 유희용으로 사용했다는 수박희가 있다. 하지만 《재물보》 이외에 교차검증이 가능한 추가 사료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어 아직까진 직접적인 관계성을 단정할 수 없으며, 대한수박협회의 송준호 회장은 이런 주장에 반발하면서 많은 토론과 성명문을 배포한 바 있다. 다만 송준호의 수박은 항목에도 있듯 그 실체가 불분명한 무술을 자기들이 직접 수박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기 때문에 이쪽 역시 확실한 신뢰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운 형국이다.
송덕기의 언급과 기술의 형태로 보면 서울 사대문안의 마을들에서 주로 행해진[9] 민속 스포츠 겸 한량들의 무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10] 그 중에서도 현대의 우리가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택견은 구한말에서 오늘날로 이어지는 근대의 윗대 택견 뿐이다. 구한말 택견계는 경복궁 근방의 우대 계열과 청계천 이남의 아래대로 패가 나뉘었는데, 송덕기는 윗대(우대)에 속한 택견인이었기 때문. 현재 아래대 택견을 표방하는 충주택견의 경우 송덕기에게 사사하고 기타 몇몇 택견꾼에게도 지도받았다는 신한승의 택견을 다루는데, 때문에 결련택견협회 같은 곳에선 송덕기 옹의 원형이 아니라고 까기도 한다.[11] 대한택견협회도 충주택견협회가 원형이 아니라고 깐다.[12] 다만 이는 매우 엄격하게 표현했을 때의 이야기로, 당시 윗대나 아랫대나 택견꾼들 개인의 성향차, 좋아하는 기술 차이 정도는 있었을지 몰라도, 기술체계나 원리가 크게 달랐다는 증언이나 자료는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윗대와 아랫대를 통틀어 (비록 협회별로 모습은 다르더라도) 택견 자체는 끊기지 않고 전승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랫대와 윗대는 순전히 각 택견꾼들의 거주 지역과 그들의 모임 장소에 따라 구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 왕십리의 까기, 평양의 날파람, 경상도의 잽이[13], 전라도의 채비, 제주도의 발찰락 등 택견과 비슷하게 발로 까고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거나 때리고 넘어뜨리는 무술 혹은 유희들이 전국 각지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택견이 최소한 18세기부터 확인되며 서울이라는 지역이 인적교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향 정도는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를 확인하긴 어렵다.
세 개 협회에서는 '전쟁시 살상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 돌팔매질을 장려했듯, 옛날 택견도 신체 격투기술을 갖추게 하기 위해 나라에서 장려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상기한 재물보 기록의 수박과 각력[14]을 계승했다는 식의 기록을 신뢰할 경우 해당되는 말로 사실 18세기 이전 문헌엔 택견이란 단어가 직접적으로 보이진 않는다.[15] 때문에 교차검증이 현재로선 불가능하고, 지금도 그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수박은 '오늘날의 택견과는 별개의 원시적 맨손 박투였다.' 혹은 '택견이 아니라 모든 맨손 격투기의 총칭이다.'는 식으로 다른 주장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여러 논쟁이 있는 상황이다.
20세기 초중반 들어 택견은 쇠퇴일로에 접어드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공식적으로 택견판을 금지한 이유도 크다. 이에 대해선 '한민족의 전통무술을 말살시키려 했다.'라는 학설과 '단순히 조선인들의 집회를 막으려는 이유였을 원인이 더 크다.'는 학설로 의견이 나뉜다.
전자는 당시 일제의 편집증 아닌가 의심될 정도의 택견판에 대한 금지와 택견꾼들에 대한 탄압을 근거로 든다. 문화재 보호법 제 961호로 지정된 사료 중 송덕기의 구술자료에 따르면 어찌나 일제가 지독하게 굴었던지 자신에게도 일제가 순사들을 붙여 한동안 밀착 감시를 당했다고 한다. 또한 김명곤의 '팽개쳐진 민중의 무술 태껸'이라는 기사 인터뷰에서 김홍식은 당시 일본놈들이 태껸한다는 말만 들어도 모조리 때려잡았다며 이 때문에 택견을 배우기가 힘들었고 자신의 어머니가 택견을 배우는 것을 극구 말렸다고 구술하였다.
한편, 후자측은 일제 치하 동안 택견판이 죽은건 맞지만 택견꾼 자체에 대한 내용은 신문에 종종 나오는 것으로 보아 택견 자체를 탄압했다기보단 택견판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모이니 조선인 집회를 막으려는 의도가 더 컸던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17] 시기에 따른 탄압 정도의 차이도 있을듯. 다만 의도가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 택견판이 일제강점기 시절 음지로 숨어버린건 사실이다.
한편, 일각에선 택견은 민속놀이지 무술로 보긴 어렵다는 경우도 있는데[18] 20세기 초 당시의 신문기사들을 보면 오히려 택견을 확실하게 무술로 인식하고 있다.[19]복 이후 1950년대에 일부 무술인들이 택견에 관심을 가져서 송덕기와 만나기도 했으나 진지하게 배우지는 않았고 주요 제자들은 한참 이후부터 등장한다. 같은 동네에 살던 고용우가 1969년부터 송덕기에게 택견을 오랫동안 배우다가 198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1990년대부터 그곳에서 택견을 가르쳤으며 2010년대부터 한국에도 전수가 되기 시작했고 이게 위대태껸회다. 신한승도 송덕기에게 1970년대 초부터[21] 수년간 택견을 배웠는데 그는 특히 택견의 무형문화재 등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문화재관리청에서 송덕기의 택견이 기술의 갯수가 얼마 되지 않으며[22] '형'[23]이 없이 낱기술들로만 이루어져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기 힘들다는 답장을 보내자 자신이 몇 가지 기술을 창안, 추가하고 본때뵈기, 동과 째라는 다른 무술들에 흔히 있는 투로와 수련 체계를 만들어 1980년대 무형문화재 선정에 성공한다.[24]
다만 이 과정에서 신한승식 택견의 느낌이 송덕기의 그것과 상당히 달라져버렸기 때문에 택견 원형 논쟁이 생기고 택견 협회들의 분파가 생기는 원인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이 신한승에게서 택견을 배운 정경화와 박만엽이 만든게 오늘날 한국택견협회이며, 마찬가지로 신한승에게서 택견을 배운 이용복[25]이 만든 것이 대한택견회다.[26] 결련택견협회는 1980년대에 송덕기에게 다년간 택견을 배운 도기현이 만들었다. 결련택견협회는 한국택견협회와 대한택견회의 택견이 송덕기의 원형 택견이 아니라는 비판 의식에서 형성된게 크다.[27] 그리고 2010년대 이후 상술된 고용우의 위대태껸이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전수를 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어느 단체건 '우리 단체가 킹왕짱이니 여기 와서 배우세요'가 된 것. 다만 택견계에서도 이들 사이를 조정하려는 시도가 아예 없는건 아니다.출처: 나무위키 택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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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 택견과 유사 용어인 탁견이 등장하는데 영조 4년 김민순에 의해 저술된 청구영언에서 사설시조에서 처음 보이게 됩니다.
조선 정조 22년 이만영이 집필한 재물보에 있는 수박은 변이라하고 각력은 무 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택견이라 한다. 라는 구절이 택견이 등장합니다.
19세기 민속화에 씨름하는 옆에서 택견하는 민초들의 모습이 나오고 20세기 초 탁견희라는 한시가 존재하는 등 한국의 기록물에서 택견과 관련된 기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려사부터 시작해 국내 역사서에 흔히 발견되는 수박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는 무술계 단체별로 여러 의견이 있으며 한국택견협회에서는 재물보를 인용해 수박이 택견이었다는 입장, 실제 택견을 나타내는 탁견희 이전에 가장 비슷한 기록상의 예시로 수박을 유희용으로 사용했다는 수박희가 있으나 재물보 외 교차 검증이 가능한 추가 사료가 없어 직접적인 관계성을 단정할수 없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택견의 유래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택견을 수련해 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오늘날의 택견의 동작과 비교했을 때 고구려
고분벽화에 택견과 유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이미 행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무용총(舞踊塚) 벽화에는 두 남자가 마주서서 택견의 견주기 동작을 취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삼실총(三室塚) 벽화에는 택견에는 품밟기의 굼실거리는 걸음걸이로 활갯짓을 하는 동작이 활달한 필치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신라에서도 택견과 유사한 신체활동을 볼 수 있다.
경북 경주 석굴암 입구에 있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택견의 주먹질 막기와 견주기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
이라든지, 분황사(芬皇寺) 층탑(層塔) 출입문 좌우에 부조된 인왕상(仁王像)의 택견 자세는 신라 택견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그러나 백제에서 행한 택견 기록이나 유적은 전해지지 않는다.백제의 옛 땅이었던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가 되는 작지(鵲旨)마을에서 조선시대에 인근 마을사람들이 모여
택견 경기를 해마다 행했다는 기록을 통해 백제 택견의 유풍이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는 『고려사』에서 택견을 수박(手搏, 手拍)이나 수박희(手搏戱)라 기록하였고, 이의민(李義旼)과 두경
승(杜景升)이 택견을 하는 구체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대중들의 경기로 널리 확대되어 무인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에게도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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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확실하게 택견의 역사에대해서 나온것은 없는거 같습니다 그저 추측 하는 자료만 나오네요 아래 내용 참조해주세요
조선 정조 22년(1798) 이만영(李晩永)이 집필한 《재물보(才物譜)》에 있는"수박(手搏)은 변(卞)이라고 하고 각력(角力)은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탁견이라 한다." 하는 구절이 택견이 최초로 언급된 사료이다. 19세기 민속화에 씨름하는 옆에서 택견하는 민초들의 모습이 나오고 20세기 초 탁견희라는 한시가 존재하는 등 한국의 기록물에서 '택견' 관련 기록이 꾸준히 나온다. 한편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 '덕견이' 라는 무술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조선상고사》 외에는 덕견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사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어 '덕견이'가 구한말 택견을 가리키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택견의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무용총과 삼실총에 그려진 벽화에 택견의 견주기나 품밟기와 유사한 동작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택견을 수박(手搏) 또는 수박희(手搏戱)라고 하여 무인들의 무예로 성행하였다.
-출처:서울시설공단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택견은 우리나라의 전통 무술 중 하나입니다. 택견은 "택"이라는 소리로 적막하고 정적인 상태를 의미하고, "견"은 손바닥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택견은 손바닥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택견의 정확한 기원과 전파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택견은 예로부터 한국에서 전해져 오는 전통 무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 무술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철학적인 가치 등을 반영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택견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와 그 창시자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예로부터 한국에서 전해져오며 전통적인 가치를 계승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통적인 무술들은 주로 가문 내에서 전수되거나 선조로부터 제자에게 전해졌으며, 지역 사회에서 전파되기도 했습니다.
택견은 한국의 무술 문화와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다양한 학파와 스타일이 발전해 왔습니다. 현재에도 전통 무술을 연구하고 전수하는 단체와 사범들이 활동하며, 택견을 학습하고 연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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