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겸사복은 어떻게 임명되었나요?
조선시대에 있던 겸사복이 왕의 호위부대 역할을 했다고 하던데 겸사복을 임명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했나요?
아무래도 왕을 호위해야하니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될 것같은데
겸사복을 뽑을 때는 어떤 과정을 거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겸사복은 국왕의 신변 보호와 왕궁 호위 및 친병 양성 등의 임무를 맡았던 금위(禁衛)의 군사였습니다.
임용은 원칙적으로 <내금위시취례 內禁衛試取例>로써 하였다. 그러나 특수성 때문에 북계인(北界人)을 우대하는 임용 규칙을 제정해 임용하거나, 국왕의 신임으로 수시로 임용하는 등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임용에는 사회적인 신분보다 무재(武才)가 더 중시되었고, 양반으로부터 서얼·양민·천인, 심지어 향화인(向化人)·왜인(倭人)들까지 포함되어 여러 계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친위병이었던 관계로 용모·학식·신장·시수(矢數) 등이 중요한 자격 요건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상승승지(尙乘承旨)에 기원을 둔 내사복시 제도(內司僕寺制度)에서 비롯되어 1409년(태종 9)에 처음 창설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1464년(세조 10)에 정비된 조직을 갖추었으며, 주로 국왕의 신변 보호와 왕궁 호위 및 친병 양성 등의 임무를 맡았던 금위(禁衛)의 군사였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겸사복의 임용에는 사회적인 신분보다 무재(武才)가 더 중시되었습니다. 따라서 양반으로부터 서얼·양민·천인, 심지어 향화인(向化人)·왜인(倭人)들까지 포함되어 여러 계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친위병이었던 관계로 용모·학식·신장·시수(矢數) 등이 중요한 자격 요건이었습니다. 북계인(北界人)을 우대하는 임용 규칙을 제정해 임용하거나, 국왕의 신임으로 수시로 임용하는 등 여러 차례 변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