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이 로마와 싸워서 승리하게 된 전투는?
카르타고와 로마는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의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그리고 전쟁 이후 어떻게 두 나라의 운명은 결정되는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니발이 로마와 싸워 승리한 전투는 칸나에 전투입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인 기원전 216년,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과 타렌티우스 바로,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맞붙은 전투로, 한니발이 지형을 활용한 전술을 통해 로마군을 대파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의 패배로 로마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에도 한니발은 여러 차례 로마군을 격파하며 전쟁을 주도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칸나이 전투를 말씀하시는거 같은데요
칸나이 전투는 제 2차 포에니 전쟁 중인 기원전 216년 이탈리아 중부 아프리아 지방의 칸나이 평원에서 로마 공화정 군과 카타르고 군 사이에서 벌어진 것으로 이 전투에서 한니발이 지휘하는 가르타고군은 완벽한 포위작전으로 로마군을 전멸시켰습니다.
로마를 굴복시키기 위해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반도에 침입, 한니발은 연이은 트레비아강 전투, 트라시메네호 전투에서 로마군에게 큰 피해를 줍니다. 로마 원로원은 급히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독재관에 임명, 파비우스는 한비발과의 전투를 교묘히 피하면서 지구전으로 카르타고군을 소모시킬 생각이었으나 한니발에 의해 이탈리아 전역이 약탈당하자 파비우스의 작전을 이해하지 못한 로마 시민들은 그를 겁쟁이라 비난하며 한니발과의 결전을 바라는 목소리를 높이게 됩니다.
이를 받아들인 원로원은 파비우스의 임기가 끝나는 동시에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와 가이우스 타렌티우스 바로 두 사람의 집정관에 임명, 적극적으로 나가라 요청합니다.
두 집정권은 약 8만 군단을 이끌고 한니발과 싸우기 위해 나섰고 파울루스는 한니발과의 정면대결에서 피하자 주장하나 바로는 결전을 바랬습니다.
기원전 216년 8월 2일 남이탈리아 아풀리아 지방의 칸나이 부근에서 당일 최고 지휘관이된 바로와 한니발에 의해 시작됩니다.
로마군은 1만의 명력을 야영지 경비를 위해 남기고, 남은 7만 여 명을 전장에 배치, 포진은 주력인 중장보병을 중앙에 , 그 앞쪽에 경장보병을, 우익을 로마기병, 좌익을 동맹군 기병을 배치합니다.
로마군의 작전 의도는 중장보병에 의한 중앙돌파였고, 그 때문에 각 중대의 간격을 좁게 해 전투열인 중앙을 두텁게했으며 중앙의 지휘는 전집정관인 세르빌리우스가 담당, 파울루스는 우익기병, 바로는 좌익기병을 지휘합니다.
카르타고군의 포진은 중앙에 중장보병, 그 앞쪽에 경장보병, 양 날개에 기병을 배치한 것은 로마군과 동일, 그러나 한니발은 중장보병을 활처럼 휘는 모양으로 배치해 튀어나와있는 중앙부에 병력을 집중시켜 종심을 깊게 합니다. 이런 진형을 짠 한니발의 의도는 중앙에서 적 주력을 붙잡고 있는 사이 양익을 적 양익과 격돌시켜 그들을 격멸하고 돌파해 적 전체를 포위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맹공격이 예상되는 중앙에 어느 정도 피해를 예상하고 갈리아 보병과 에스파냐 보병을 배치, 그 양익에 숙련된 카르타고 보병을 배치, 거기에 보병 전투열의 우익에 누미디아 기병, 좌익에 에스파냐-갈리아 기병을 배치합니다.
카르타고군은 로마군에 비해 전군에서 기병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고 그 질과 수도 로마군의 기병에 비해 매우 높았습니다.
전투 개시와 동시에 로마군의 중장보병은 카르타고의 보병 전투 대열을 돌파하며 전진, 에스파냐-갈리아 보병이 겨우 버텨 활의 윈 부분에 다다르자 로마군 중앙의 전진속도가 다소 느려지게 되었고 그 사이 카르타고 군 좌익에 에스파냐-갈리아 기병이 우세한 전력으로 로마군 우익기병을 압도해 이들을 패주시킵니다. 한편 카르타고군 우익의 누미디아 기병과 로마군 좌익의 동맹군 기병은 호각지세로 전투를 벌였고
아군의 전투 대열 중앙이 압도 당하는 것을 본 한니발은 양익의 카르타고 보병을 전진시켜 로마군 전투열의 양익을 압박, 한편 로마군 좌익기병을 패주시킨 하스드루발 지휘하의 에스파냐-갈리아 기병은 바로 방향을 바꿔 누미디아 기병과 교전하는 동맹군 기병을 협공합니다.
전력으로 약세였던 동맹군 기병은 얼마안가 패주하기 시작, 카르타고 기병은 도망치는 로마군을 쫓지 않고 로마군 중앙의 후방으로 방향을 돌려 돌입합니다.
로마군 중앙 전투 대열은 거의 카르타고군 중앙을 돌파하고 있었으나 전투 대열 양익은 카르타고 보병이 우세함을 보여 그쪽 방면의 로마군은 전진하지 못했고 이 시점에서 로마군 중앙은 v자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이때 양익의 로마군 기병을 패주시킨 카르타고군 기병이 후방에서 공격, 후방을 공격당한 로마군은 패닉상태에 빠져 밀집하기 시작, 이로 중앙의 병사들은 몰려드는 병사들에 압박을 못이기고 압사당합니다.
전방을 에스파냐- 갈리아 보병, 측면을 카르타고 보병, 후방을 카르타고, 누미디아 기병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로마군은 도망치지 못하고 괴멸당하기에 이르며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거의 6만명에 이르는 사상자, 야영지에 남아있던 1만여명은 포로가 됩니다.
그날 최고지휘관이었던 바로는 도망치나 다른 지휘관인 파울루스는 전사, 중앙을 지휘하던 세르빌리우스와 독재관 미누키우스도 전사, 기타 80여 명의 원로원의원도 전사합니다.
당시 원로원은 최대일때도 300명을 넘지 않아 4명 중 1명 이상 꼴로 전사한 것인 반면 카르타고 군의 피해는 6000명정도, 그 대부분은 중앙의 에스파냐-갈리아 병사들이었습니다. 이 전투는 로마 측에게 인적손실로 엄청난 피해를 입혔고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전투 후 로마는 한니발과의 정면대결은 피하고 지구전으로 전력을 변경, 파비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두 명의 집정관이 공격 대상을 시칠리아와 에스파냐 등 카르타고 주변으로 변경해 바깥에서 붕괴를 노렸습니다.
우세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카르타고 해군을 위협해 카르타고 본국으로부터 한니발에 대한 보급을 끊고 전력의 재편성과 칸나에 패전의 원인이었던 기병육성에 노력해 자마 전투에서 승리, 기병의 조달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동맹국의 기병과 누미디아 기병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니발은 이 승리로 인해 로마 동맹도시가 배반하길 기대했으나 동맹도시의 약속은 그대로 지켜져 충분한 성과는 올리지 못했고 적지에서 보급에 대한 어려움을 겪던 한니발은 로마를 공격하지 않고 비옥하고 카르타고 본국과도 연락을 취할수 있는 이탈리아 남부로 공격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니발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사군툼 공격을 시작으로
함락시켰습니다.
이후에 알프사 산맥을 넘어서 트레비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칸나이 전투에서도 로마군을 격파하였고
기원전 212년 실라루스 전투에서는 매복으로 3개 군단에 해당되는 1만 5천여 명의 병력을 전멸시키고 그 뒤 헤르도니아에서 3개 군단을 더 괴멸시켰습니다.
이후에 자마전투에서 패배하여 카르타고가 패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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