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一然)은 시를 잘 짓는 승려로 일찍이 명성이 높았다. 그가 사대부들과 교유할 때는 견명(見明)으로 통했으니 일연의 본명은 견명이었다. 일연이란 이름은 만년에 사용한 것이었는데 사후에는 일연으로만 불리게 되었다. 일연처럼 장성한 뒤에 개명하는 예가 고려시대에는 비일비재하였다. 유명한 문인 가운데 개명한 이를 보면, ‘파한집’의 저자 이인로(李仁老)는 본명이 득옥(得玉)이었고, 이규보(李奎報)는 본명이 인저(仁底), 김지대(金之岱)는 본명이 중룡(仲龍), ‘보한집’의 저자 최자(崔滋)는 본명이 종유(宗裕) 또는 안(安)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장년 이후에도 마음대로 이름을 바꿀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개명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호적에 오른 이름을 바꾸려면 재판을 거쳐야 하는 현재의 법과는 그 문화가 아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