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롭스키의 대한 업적과 여생을 알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오스트롭스키의 업적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어떤 작품을 했는지도 궁금하고 인문계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러시아 리얼리즘 시기의 대표적 극작자고 주로 상인, 지주, 관리의 탐욕과 위선을 고발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비애를 그렸습니다.
또한 연출가, 교육자로 러시아 국민연극의 부흥을 위해 당시의 보수적인 제국극장이었던 말리 극장의 개혁에 힘썼고 만년에는 그 문예부장과 연극학교장을 겸직, 이 극장은 오스트롭스키의 집 이라고 호칭될 만큼 그의 대부분의 작품을 상연, 훌륭한 배우를 길러냈으며 연극에 있어 사실주의의 전통을 확립함으로써 그 이후의 연극에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러시아 제국 볼히니아현(현재의 우크라이나 리우네주) 빌리야 마을의 가난한 노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후, 기차역 식당의 급사 등으로 일했다. 러시아 내전 시대에는 14세에 당 운동에 참가, 이듬해에는 유명한 부존누이의 제1기병군단에 들어갔으나 부상을 입고 제대하여 고참 볼셰비키 당원으로서의 활동에 종사했다. 그러나 이 상처가 도져 1924년 악성 관절염에 걸렸고 이어서 실명하면서 전신 불수가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는 자살에 관하여 생각하게 되나 자신의 짧은 여생을 사회적으로 의의가 있는 소설을 쓰는 데에 바치기로 결심, 막심한 고생 가운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해서, 한 청년이 어떻게 하여 굳은 신념을 갖는 공산당원으로 성장하는가를 썼다. 자전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 한 작품으로 그는 소비에트 작가동맹의 회원이 되었고, 35년에는 레닌 훈장을 받았다. 이어서 독일군 점령하의 우크라이나에서의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제2작 <폭풍 속에 살아 가는 자>의 집필에 착수했으나 제1부를 완성시켰을 뿐 요독증으로 짧은 일생을 마쳤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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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는 소련의 소설가로 1936년에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으로는 < 빈곤한 인간들> <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등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짧은 여생을 사회적으로 의의가 있는 소설을 쓰는 데에 바치기로 결심 해서 쓴 소설이 자전 소설 < 강철은 어떻게 단련 되었는가> 바로 그것이다. 이 한 작품으로 그는 소비에트 작가동맹의 회원이 되었고, 35년에는 레닌 훈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모스크바 출생. 사법관리의 아들로, 모스크바대학 법과를 중퇴하여 법원 서기가 되었으나, 연극에 대한 정열을 버리지 못하여 마침내 극작에 몰두하게 되었다. 평생을 통하여 50편에 가까운 희곡을 썼는데, 모두 상인 ·지주 ·관리의 탐욕과 옹고집 ·횡포와 위선을 꼬집고, 그들에게 학대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 작품의 특색은 갈등과 변화무쌍한 줄거리, 등장인물의 뚜렷한 성격, 명쾌한 언어와 행동에 있다.
실제로 그만큼 간결하고 정확하게 명암과 표현에 뛰어난 무대의 언어를 창조하고 구사한 작가는 드물다. 또한 연출가 ·교육자로서 러시아 국민연극의 부흥을 위하여 당시의 보수적인 제국극장이었던 말리극장의 개혁에 힘썼고, 만년에는 그 문예부장과 연극학교장을 겸직하였다. 이 극장은 ‘오스트롭스키의 집’이라고 호칭될 만큼 그의 대부분의 작품을 상연하였고, 훌륭한 배우를 길러냈으며, 연극에 있어서 사실주의의 전통을 확립함으로써 그 이후의 연극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 《가정의 행복도 Kartina semeinogo schastiya》(1847), 《가난은 죄가 아니다 Bednost’ ne porok》(1854) 《뇌우(雷雨) Groza》(1860) 《뜨거운 마음 Goryachee serdtse》(1868) 《숲 Les》(1871) 《재능자와 숭배자》(1882) 《죄없는 죄인》(1884) 등이 있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