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이이는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와 십만양병설 등 개혁안을 올렸습니다.
군제 개혁을 포함한 조선의 전반적인 체제에 대한 개혁안이 담겨 있었습니다.
군역은 양반들에게 부과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갖은 편법으로 면제를 받았습니다.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이러한 군역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었기에 당시의 지도층은 이를 탐탁치 않아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이 없는데도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곧 화근을 기르는 것이다.'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습니다.
임진왜란은 그로부터 십년인 1592년에 발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