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 왜 '글자 없는 비석' 세웠나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는 지금까지도 평가가 엇갈리는데요. 측천무후의 사후, 그녀의 무덤 앞에 세워진 비석에는 아무런 글귀가 새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글자 없는 비석을 세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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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각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자식까지 죽인 그녀의 악행이 기록될까 두려워 했다는 설, 비석에 새기기에는 너무 업적이 많아 비워두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너무 업적이 많아 이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는 취지로 글자 없는 비석을 무덤 앞에 세우도록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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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당나라 측천무후(624~705)의 비석은 글자가 없습니다. 그녀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황제로 15년간 재위하면서 혁명적인 정치일정을 밟았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자기비석을 글자없이 비워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들이 지을 비문은 보나마나 여자인 자기에게 결코 후하지 않을 것이며 또 제국을 위한 대인배 정치를 소인배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