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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들의 의복을 위시한 조선 복식의 문양에 화조나 사군자가 선호된 근본적인 원인 역시 소재의 다양한 상징성 때문이었다. 특히, 장수, 다자, 부귀의 상징으로 상용되던 복숭아, 포도, 석류, 연꽃, 모란 문양 등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그에 비해 사군자는 단독으로 쓰인 경우가 매우 드물었고, 길상적 소재와 함께 어울려 쓰인 경우가 많았다. 몸에 착용하는 의복은 아니지만 가마 덮개, 벽걸이, 방석으로 두루 쓰였던 깔개(毯)의 문양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다른 한편 연꽃은 고달픈 여인네들의 삶을 달래주는 벗이 되기도 하였는데 경상도 상주지역의 대표적인 민요인‘상주 모심기 노래’에서는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 큰아가/연밥줄밥 내 따주마 우리부모 섬겨주소/고초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 하더라/ 나도야 죽어 후생가면 시집살이는 안할라네”라고 하였고,
조선시대 비운의 천재 여류시인이자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였던 허난설헌은‘연밥 따는 노래’에서“맑은 가을 호수에 옥 같은 물 흐르는데/연꽃 무성한 곳에 배를 매어 두고/님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고는/남의 눈에 띄었을까 반나절 무안했네”하며 불운한 자신의 삶을 연꽃에 비유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