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은 그 당시 어떻게 중국을 갔을까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중국의 강을 건너는 장면이 나옵니다. 박지원은 어떤 계기로 중국을 가게 되었으며, 중국어를 할수 있었던걸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살 생일이 있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진하겸사은사를 파견했는데 사신단장으로 박지원의 8촌 형인 박명원이 파견됩니다.
박명원이 자신의 자제군관으로 박지원을 임명하면서 박지원은 청나라로 가게 됩니다.
5월 25일 조선을 출발해 8월 1일 베이징에 도착, 8월 5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렀다가 건륭제가 열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4일만에 500리를 달려 8월 9일 열하에 도착하는 등 강행군으로 고생하다 10월 27일 한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18세기 조선에서 중국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사신단에 포함되어 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신단에 포함되어 가는 경우는 조선 정부에서 파견하는 사신단에 포함되어 가는 방식입니다. 사신단은 조선의 국왕을 대표하여 중국의 황제를 알현하는 공식적인 외교 사절단입니다. 사신단은 조선의 통신사, 진상사, 진헌사, 납공사, 진표사 등 다양한 목적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사신단에 포함되어 가는 경우, 사신단의 일원으로서 중국을 방문하게 되므로, 여행 경비와 안전은 조선 정부에서 책임지게 됩니다. 또한, 사신단은 조선 정부의 지시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여행의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는 경우는 조선의 백성들이 개인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방식입니다. 개인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경우, 여행 경비와 안전은 개인이 책임지게 됩니다. 또한, 개인은 조선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여행의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기록한 중국 여행은 개인적으로 가는 방식에 해당합니다. 박지원은 1780년(정조 14년)에 중국의 청나라를 방문했습니다. 박지원은 조선의 사신단에 포함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상선을 타고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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