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신라의 골품제로 백성들의 불만은 없었나요?
신라는 독특한 신분제도인 골품제가 있었는데요.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신분에, 능력이 있어도 관직에 오르지 못하다보니 불평불만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특별히 봉기나 반란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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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골품제도로 인한 반란은 없었지만 진급 상한에 6 ~ 4두품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일종의 특진 제도인 중위제가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6두품의 경우 아찬(阿飡) 이후 중아찬(重阿飡), 이중아찬(二重阿飡), 삼중아찬(三重阿飡), 사중아찬(四重阿飡)까지 오를 수 있었고, 5두품과 4두품의 경우 각각 9중(대)나마, 7중나마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위제를 통해 6 ~ 4두품까지의 불만을 다소나마 완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위제는 단지 관직은 그대로고 명목상 직위만 높이는 식의 제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분명 대아찬 밑이었지만 대아찬이 이중아찬이나 삼중아찬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게 하는 모종의 효과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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