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이 패권을 내어준것이 언제인가요?
16세기에 포르투갈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세계의 바다는 포르투갈의 것이다고할 정도였는데 이후 포르투갈이 이류국가로 탈락하고 패권을 내어준것은 무엇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든 시점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19세기의 남은 기간 동안 포르투갈은 내전과 9월 혁명, 마리아다폰트 혁명, 파툴레이아 전쟁 등 반복되는 반란과 무력 봉기와 같은 거대한 사회정치적 혼란기를 겪었으며, 1852년 헌장에 추가 법령이 더해지면서 겨우 정치적 안정과 재생 기간 중 주를 이룬 폰트스 페레이라 드 멜루를 앞세운 진흥 정책의 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19세기 말엽, 포르투갈의 식민지 야욕은 영국과 충돌했고, 이는 1890년 영국의 최후통첩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요구에 대한 굴복과 점점 더 흔해져가는 경제 문제와 논란으로 인해 왕실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커져갔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08년 2월 1일 국왕 동 카를루스와 왕세자 동 루이스 필리프가 암살됩니다. 마누엘 2세가 이끈 왕실은 2년을 더 유지하지만, 1910년 10월 5일에 일어난 1910년 10월 5일 혁명을 계기로 공화국이 수립되며 폐지됩니다.
1910년 10월 5일 공화국이 수립된 지 머지않아, 젊은 왕 마누엘 2세는 잉글랜드로 떠나게 됩니다. 이 후 수년간 노동자 투쟁, 소요사태 ,봉기, 정치인 암살, 재정위기 등 정치적 혼란을 겪었고, 이러한 문제들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면서 더 깊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6년 군대가 권력을 쥐게됩니다. 군사 정권은 1928년 재무부 장관으로 코임브라 대학교의 교수였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를 임명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라자르는 1932년 각료회의 의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엔히크 왕자를 필두로 바톨르뮤 디아스와 바스쿠스 다 가마의 대항해를 열었던 포르투칼은 대항해 시대 당시 스페인에 견줄 수 있는 강대국이었지만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프로이센(독일)의 급부상으로 상대적으로 힘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짧은 영광 속에서도 그들의 문화는 남미와 아시아 고곳에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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