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쫓을때나 부정타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소금을 뿌리는 이유는 언제부터 였나요?
귀신을 쫓을 때나 부정을 타는 행동을 해서 미움을 산 사람들에게는 항상 소금을 뿌리더라구요. 이 소금을 뿌리는 이유는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나요? 왜 뿌리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금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물질이죠.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소금에 관한 전설이나 신앙 따위가 많이 생기게 되었다고합니다. 소금은 고기가 썩는 것을 막고 사람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라 하여 깨끗하고 신성한 것, 초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또 소금은 마귀를 물리치고 유령을 쫓는 데도 큰 힘이 있다고 믿었다고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집안으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다 하여 대문 앞에 소금을 뿌리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드러기 등의 피부병이 생겼을 때도 피부에 매운 연기를 쏘이며 볏짚이나 빗자루 같은 것으로 몸을 쓸었다고합니다. 이때 온몸에 소금을 뿌리며, "네 두드러기, 내 두드러기, 어서 썩 사라져라!" 하고 외치면 아무리 심한 두드러기라도 쉬이 났는다고 생각했다고하네요. 술의 생산지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지방에도 이와 비슷한 풍속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술이 썩는 것은 바로 못된 마녀의 마술 때문이라고 생각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마녀를 물리치기 위해 술통 위에 소금을 한 줌씩 던져 놓는다고 합니다. 또한 갓난아이를 해치는 악령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 곁에 소금을 놓아둔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상북도 문경 금하굴이란 동굴에 얽힌 전설이 소금뿌리는 것에 유래 합니다.
이 동굴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독특한 출생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데 견훤의 엄마는 동굴이 있는 근처의 마을에 살았는데 처녀 시절 어느날부터 밤마다 붉은 망토를 두른 장군이 찾아와 잠자리를 하고 돌아가니, 처녀라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할수없어 하루는 머리맡에 명주실을 바늘에 꿰어 놓고 잠을 잤는데 장군이 또 꿈속에 나타나자 처녀는 꿈속에서 장군의 속옷에 바늘을 찌릅니다.
그런데 바늘이 옷을 뚫고 장군의 배꼽까지 들어갔으니, 놀란 장군은 몸을 일으키며 처녀에게 '나는 땅 신의 부름으로 너에게 천하를 통일할 자식을 잉태시키러 온 지렁이 대왕인데, 이처럼 바늘에 찔려 죽게 되었으니 네 자식은 한나라의 왕은 될지언정 천하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것. ' 이라며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처녀가 눈을 떠보니 명주실이 밖까지 늘어져 있어 실을 따라가보니 굴이 나왔고 굴속에 커다란 지렁이가 몸에 바늘이 꽂힌 채 죽어있었고 후 처녀는 배가 부르더니 견훤을 낳게 되었습니다.견훤은 말 그대로 자라 후백제를 세우고 후고구려의 왕건과 통일을 위해 싸웁니다.
경순왕의 신라는 이미 싸울 능력을 잃었고 왕건과 견훤이 마지막 승부처인 경북 안동에서 대치하는데 수차례의 전투에도 승부가 나질 않자 왕건의 심복 부하가 '견훤은 지렁이의 화신으로 물기가 많은 강과 하천에 소금을 뿌리면 기력이 빠질것입니다.' 라고 귀띔하자 왕건이 소금 3000포대를 주변의 강과 습지에 뿌리자 견훤은 급격히 기력이 쇠하며 전투에서 패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 고장에서 귀신을 쫓는 방법으로 소금을 뿌리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초상집에 갔다가 귀가하는 즉시 소금을 자신의 몸에 뿌린다거나 만나고 싶지 않던 사람이 집에 찾아왔다 돌아가면 문 밖에 소금을 뿌리곤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소금의 특징인 탁월한 흡착성과 정화 작용이 무속신앙과 관련을 맺으면서 소금으로 나쁜 기운을 빨아들이고 주변의 귀신을 쫓아버린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경상북도 문경에는 '금하굴'이란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에 얽힌 전설이 '소금 뿌리다'라는 유래의 빌미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이걸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삼국 시대 이전에 이미 소금 뿌리는 행위가 시작 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