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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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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북대문을 숙정문이라고 이름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대문의 이름을 지을 때유교 도덕의 인의예지에 따라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이라고 지었다고 하는데요, 숙정문은 왜 지 자를 대신해 정 자를 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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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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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북청문 등으로도 불리웠다고 합니다. 후에 맑을 청(淸)에서 삼수변을 설 립(立) 자로 대체한 꾀할 정(靖)으로 표기가 바뀌어 숙정문(肅靖門)으로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입니다. 숙청문이라는 표현은 1703년을 마지막으로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숙정문은 남대문인 숭례문과 대비하는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문은 정월대보름 전 세 번 놀러오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속설이 있어 여인들이 자주 찾았으며, 덩달아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노인옥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한양의 성문 축성 기록이 자세하게 나오는대요. 조선은 유교의 ‘오상(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본떠 사대문의 이름을 흥인, 돈의, 숭례, 숙청으로 지었고 신(信)은 보신각(普信閣)에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님의 질문처럼 북문만 예외인대요. 원래 숙종 때 ‘홍지문(弘智門)’으로 세워졌는데 백성들이 지혜로워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름이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으로 북은 음(陰)이라 숙청문을 열면 장안의 여자들이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도 있었다고 합니다. 숙청문은 조선 중기 이후 숙정문(肅靖門)으로 바꿔 불렸다고 합니다.

    미흡하나마 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숙정문은 원래는 '지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의 '숙청문(肅淸門)'이라고 했으나,

    이후 중종 때에 '청(淸)'을 고요하고 안정되어 있다'는 '정(靖)'자로 바꾸어 '숙정문'이 되었다. 1523년(중종 18년) 처음으로 '숙정문'이라는 표기가 쓰인 후 혼용되다가 '숙정문'으로

    굳혀 쓰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