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의 목표는 서울이였습니다. 명량해전이 있기 직전 히데요시는 전라도와 충청도의 함락을 목표로 육군을 진군시킵니다. 그리고 전주를 함락합니다. 남하했던 병력은 다시 육군과 수군이 혼합되서 육로와 해로로 나뉘어져 서울함락을 위해 진군하였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수군은 신속한 물자 조달과 이동을 위해 최단거리를 선택해야 했기때문에 당연히 해안선을 따라 이동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 일본수군은 우리나라 서남해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명랑해협의 물살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순신은 이것을 간파하고 때마침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한 명랑해협에서 왜군을 기다린 것입니다. 당시 조선 수군은 판옥선과 거북선의 기동성을 위주로한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에 해협보다는 넓은 바다에서 전투를 많이 했습니다.
왜 육지가 아닌 해상에서 싸운이유는 군량미등의 전쟁물자는 당시에는 배로 옮기는 것이 가장 편리했으며, 수송이 수월했기때문입니다.
출처 -참고자료: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남천우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