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는 어떻게 조선을 건국하게 되었나요?
조선의 초대 왕이었던 이성계는 고려와 다른,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 조선이라는 국호를 짓고,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고려가 아닌 조선을 세우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는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중국의 전체를 장악해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명나라가 과거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를 세워 관리하던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겠다는 의도였죠. 하지만 당시 군부의 실권자였던 최영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여 당시 왕이었던 우왕(공민왕)을 설득하여 요동을 먼저 치자고 하며 전쟁으로 맞서게 됩니다.
당시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쳐서는 안되며, 여름이라 농번기로 군사를 모으기가 어렵고, 많은 군사를 이동시키면 남으로 왜구가 쳐들어오며, 여름에 장마가 지면 덥고 습해 전염병으로 전쟁이 어렵다는 4가지 이유로 전쟁을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군부의 실권자이자 왕권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최영은 자신의 뜻대로 요동정벌에 나서게 됩니다. 이 때 최영 자신이 8도 도통사가 되고, 좌군도통사에 조민수, 우군도통사에 이성계를 선봉으로 하여 전쟁을 시작하거 됩니다.
위화도에 도착한 이성계는 압록강이 불어났다는 이유로 2주를 지체하게 되고 회군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반드시 회군을 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조민수와 논의하여 회군을 결정하였고, 왕명과 최영의 명을 어겼으므로 죽임을 당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한 그들은 개경을 공략하여 우왕을 폐위시키고, 최영을 유배 보낸 뒤 죽여버립니다.
이후 바로 새로이 국가를 세운 것은 아니고 우왕(공민왕)의 아들을 창왕으로 세읍니다. 이후 함께 역모를 한 조민수와 권력 대립하다 조민수도 유배를 보내게 만들고 창왕도 폐위한 후 다시 공양왕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과거 최영이 가졌던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고, 이러한 권력이 결국 조선 건국의 초석이 됩니다.
이후 가신들과 주변의 권유에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던 이성계가 왕에 오르고 국호는 과거 고려와 같이 할 수는 없다 하여 옛 국호에서 살펴 조선으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이성계와 사대부의 연계: 고려말 최영과 이성계가 권문세족들을 숙청함에 따라 신진 사대부 세력은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되어 막강한 세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을 등에 입은 이성계를 신진 사대부가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요 2. 이성계는 막강한 사병 2000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힘은 일당 백이었다고 합니다 3.백성들의 지지: 위화도 회군이후 백성들은 고려의 부패한 세력보다 이성계를 지지하는 백성이 많아졌지요 4. 이방원의 고려 강경파 숙청: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고려의 강경파들을 완전 제거함으로 새로운 이씨 조선을 세우게 된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육아·아동전문가입니다.
이성계는 고려말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으로 고려가 신음하던 때에 무공을 세운 신흥무인 중 1인입니다. 최영 장군도 이때 활약한 무인입니다. 고려말 중국은 원나라에서 명으로 교체되던 때였는데, 명은 공민왕이 수복한 땅을 요구하여 고려 조정에서는 명에 대항해 요동정벌을 준비하고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최영의 지휘 아래 이성계도 출정하다 위화도에서 4불가론을 제기하며 회군하여 개경으로 군대를 이끌고 집입해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이성계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 왕조를 세우자는ㅈ급진사대부의 지지를 받고 이를 단행한 것입니다. 정도전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을 역성혁명파라고 합니다. 반면 고려왕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고려의 모순을 개혁하자는 이들도 있었는데 온건사대부입니다. 정몽주, 길재가 대표적입니다.
한양천도는 이성계가 단행했으나, 국호는 조선과 화녕 중에 어떤 것이 좋겠느냐고 명황제에 물었는데, 조선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명은 이성계를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는데, 국새를 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고려말 불고의 타락과 대토지 소유에 의한 생산기반 및 농민의 어려움 등 모순을 새왕조를 세워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급진사대부와 이성계거 손잡고 단행한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테스티아입니다.
사실상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려면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고려를 계승한다고 해버리면 고려 내에서 개혁을 하면 되지 왜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느냐?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었으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라는 명분하에 조선을 세우고, 우리나라의 가장 처음에 건국된 국가였던 고조선을 계승한다고 한 것입니다. 수도 역시 새로운 왕조가 개창되었음을 천명하기 위해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것이죠.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