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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에서 되, 돼를 쉽게 구분하는 법은 어찌되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되’와 ‘돼’는 서로 다른 말이 아니다. 기본형인 ‘되다’의 어간 ‘되-’에 ‘-어, -어라, -었-‘ 등이 붙어 줄어든 것이 ‘돼, 돼라, 됐-‘과 같은 ‘돼-‘의 형태이기 때문이다.따라서 ‘되’와 ‘돼’ 중 어느 것을 써야 할지 헷갈리는 곳에 ‘되어’를 넣어보면 바른말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돼’가 들어갈 자리에는 ‘되어’가 들어가도 자연스럽지만, ‘되’가 들어갈 자리에 ‘되어’가 들어가면 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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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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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질문입니다. '안'과 '않'이 헷갈려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1. '안'은 '아니'라는 부사의 줄임말로 용언(동사/형용사) 앞에 쓰이면서 부정문을 만든다. 2. '않'은 '아니 하'의 줄임말로 동사나 형용사 뒤에 붙어서 부정문을 만든다.-출처: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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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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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과 몇일은 어떠한 구분으로 각각 써야할까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국립국어원 sns계정에서 운영 중인 우리말 한입이라는 게시물을 통해서 '몇일' '몇 일'이 잘못된 표현이며, '며칠'이 '몇'과 '일'의 합성어가 아닌 고유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출처: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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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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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때 쓰는 면사포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신부가 면사포를 하는 이유는첫째: 예전엔 신랑 신부가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 때 신랑이 신부의 얼굴을 예식전에 보지 못하게 베일을 씌웠다고 합니다.둘째: 하얀색의 베일을 쓴 이유가순결의 의미를 담았으며 또한 축하한다는 의미도 있었다고 합니다.셋째: 로마시대에는 길이가 긴 롱베일이 유행했는데 롱베일은 신랑을 상징했고'신부는 신랑의 보호로 안전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라는 뜻을 보여준 것이라고 합니다.넷째: 기후관련해서 야외에서 결혼을 할 때 모래바람이 신부의 눈에 들어가지 않게 막는 역할로면사포를 썼다는 설도 있답니다.-출처: 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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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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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구락부는 단순히 사교모임을 뜻하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1895년 8월에 제3차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성립되어 친일파 각료들이 배제되는 대신 친러파로 지목되는 이완용·이범진(李範晉) 등이 입각하자, 정동구락부를 중심으로 한 서울 시내에는 고관이 암살되리라는 풍문이 유포되었다.결국 1895년 10월 초 일본공사관에 의해 획책된 명성황후 일파와 친러파에 대한 거세 음모는, 조선 정부가 정동구락부를 중심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구미 열강과 손을 잡지 못하도록 하려는 고육책이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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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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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과 사액서원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서원에는 칙액을 받은 사액서원과 그렇지 않은 보통서원이 구별되어 있었는데, 사액서원에 대해서는 학전(學田) 3결을 지급하여 면세위토(免稅位土)로 처리하고, 비사액서원의 학전에 대해서는 면세의 특전을 인정하지 아니하였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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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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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록지마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뜻으로, 남을 속이려고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기원전 221년 중국 역사상 최초로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은 자신을 단순환 왕이 아닌, '황제'라는 칭호로 부르게 했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는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해 태자 부소를 죽게 만들고 나이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워 실권을 장악했다. 어느 날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폐하를 위해 구한 명마"라고 거짓말을 했다. 호해는 조고에게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오(지록위마)"라며, 신하들에게 "공들이 보기에 저게 말이오, 사슴이오?"라고 물었다. 이들 중 진실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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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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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악보는 누가 처음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서양 음악에서는 고대부터 문자로 음의 높이(高低)를 나타내는 문자보(文字譜)가 있었고,중세에는 '네우마(neuma)' 악보가 있었으며, 12세기에는 5선에 음의 길이를 나타내는 유량악보(有量樂譜)가 나왔다. 17세기에는 오늘날에 쓰는 것과 거의 같은 5선악보가 정비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악보가 되었다. 동양에서도 문자보는 예로부터 쓰여왔고 또 그 종류도 많았다.-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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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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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은 어떤곳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외규장각(外奎章閣)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이다. 정조는 외규장각이 설치되자 원래의 규장각을 내규장각(內奎章閣, 내각)이라 하고, 각각의 규장각에 서적을 나누어 보관하도록 하였다.-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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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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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국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서 무역이 발달했다던데 주요 무역물품이 뭐였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발해가 중국으로 수출한 상품은 담비·호랑이·표범·곰·말곰·토끼·쥐 등의 가죽, 인삼·우황·白附子·사향·꿀 등의 약재, 고래·마른 문어·매·말·양·布·綢·紬·구리 등이었다. 당에서 발해에 들여온 물품에는 帛·錦·綿·絹과 금·은으로 만든 그릇 등이 있었다.-출처: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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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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