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들은 조금도 안걸어다녔나요?
조선시대 왕들은 대부분 가마나 여를 타고 이동했지만 반드시 걸어다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실록에 의하면 궁궐에서 왕은 여를 타고 이동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협문은 낮고 좁아 가마가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접 걸어서 통과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마나 여를 타지 않는 것은 권위 존중을 위해 공식 석상에서 불가능하였지만 산책과 같은 경우에는 국왕의 의지에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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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옥의 협문 높이가 낮은이유
조선시대 협문이 낮게 설계된 것은 우선 침입 방지를 위한 보안 이유 때문입니다. 낮은 문은 말을 타거나 무장을 하고 드나들수 없게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외부의 위협을 줄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또한 유교적 예절 문화의 영향입니다. 들어올 때 고개를 숙여 자연스럽게 공손함을 보여주게 하도록 한 것입니다. 즉, 양반 가옥에서 하인, 소님이 주인을 함부로 쳐다보지 못하도록 한 것이죠. 그 외에도 조선 시대 사람들은 현대인들에 비해 키가 작은 것도 영향이 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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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옛날에는 인명 표기가 여러가지였나요?
옛날 국왕들은 여러 이름을 사용한 것은 순수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고대 시대 한자를 빌어 사용하다 보니 각시대, 사서마다 다르게 표기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리왕은 광개토대왕릉비에 儒留(유류), 삼국사기에 類利(유리), 累利(누리), 孺留(유류) 등으로 표기했습니다. 즉, 우리말의 음운 체계와 한자 음차 표기가 다르기 때문에 빌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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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시 모건스텐리의 비상메뉴얼 작동관련
모건스탠리 비상메뉴얼은 연 4회 시행되는 비상 대피 훈련입니다. 직원들은 계단으로 대피하는 훈련입니다. 이 훈련은 1993년 1차 WTC 폭탄 테러 후 만든 대피 훈련 메뉴얼입니다. 이 덕분에 9. 11 테러 당시 남쪽 무역 센터 타워 직원 2,6897명 가운데 2674명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테러 당일 오전 8시 46분 북쪽 타워에 1차 비행기가 충돌하자 항만관리청의 '대기' 지시에도 불구하고 레스콜라가 즉시 모두 계단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하여 2차 남쪽 타워 충돌하였을 때 이미 99%가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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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영웅제도가 있고 혜택이 많다고 하는데요.
미국에서는 '명예 훈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예 훈장 제도는 의회 승인 이후 미국 최고 훈장으로 전투 중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용맹을 보인 군인에게 수여합니다. 남북전쟁 이후 부터 총 3000여명에게 수여했습니다. 명예 훈장을 받으면 월 1600달러, 병원 무료 진료, 자녀는 사관학교 자동 입학이 보장합니다. 그 외에도 항공기 무료 탑승, 백악관 초청, 퇴직금 감면 등의 혜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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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을 부르는 명칭은 어떻게 정해지나요?
왕을 부르는 명칭은 사후에 후대에 업적으로 바탕으로 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왕의 사망 후 종묘에 신주를 모실 때 결정합니다. 고구려, 백제는 5세기 중국식 시호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라는 6세기 지증왕 시기에 마립간 칭호가 중국식 왕호로변경되었습니다. 고려는 태조 이후 조, 종 묘호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원 간섭기에는 원나라 사신이 공식 시호를 붕해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건국과 함께 조, 종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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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군부인에서 변우석을 자가라고 부르는데요.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에서 이안대군 역의 변우석을 신하들이 부를 때 '대군 자가'라 부릅니다. '자가'는 조선 시대 왕실에서 왕세자가 아닌 대군, 군을 부르는 공식 존칭입니다. 예를 들어 '마마'는 왕, 왕비, 세자, 세자빈만 사용하며, '저하'는 왕세자 전용이며, '자가'는 대군, 군에게 사용합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서 성종의 동생인 의안대군을 '의안대군 자가'론 부른 기록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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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미국이 전쟁 중인 이유가 뭔가요?
이란과 미국의 전쟁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의 반미주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사관 인질 사태, 이란 핵개발 문제로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본래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친미, 친이스라엘적인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무너지면서 반미정권이 수립되었으며, 오랫동안 갈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 재집권 이후 이란이 핵협상에서 완전 포기를 거부하면서 2026년 미국의 공습이 촉발되었습니다. 미국은 이란 핵 저지와 정권 교체, 중국 견제와 중동 지역의 미국의 국가 이익 증대 등을 위해 전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란은 신정 정치와 혁명수비대의 권력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전쟁을 지속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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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은 왜 아무거나라는 표현이 정착댓을까여?
좋은 질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식당, 카페에서 메뉴를 선택을 물어보면 '아무거나'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이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개인의 의견보다는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배려, 예절을 고려한 것입니다. 즉 상대에게 선택권을 주어 갈등을 피하려는 습관입니다. 반면에 서양은 개인주의가 강해 구체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또한 개인의 의사 결정보다는 집단의 결정을 따르는 집단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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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는 어떻게 다른가여?! 답글 바랍니다만…?
아메리카를 남북 아메리카로 구분하는 것은 지형적 구분에 따른 것입니다. 즉, 파나마 운하 이남은 남아메리카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리고 아메리카를 앵글로 아메리카와 라틴 아메리카로 구분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를 구분으로 하는 것입니다. 즉, 앵글로아메리카는 영국, 라틴 아메리카는 스페인, 포루투갈 문화(예, 언어, 종교)를 기준으로 합니다. 즉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인 리오그란데강을 경계로 하여 구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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