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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이 한화정책을 실시한 이유가 뭔가요?
통일 이후 신라 사회는 진골 귀족 세력이 강해 중앙 집권적 통치가 어려웠습니다. 경덕왕은 유교 이념에 입각한 관제 정비와 한화 정책을 통해 왕이 임명하는 관료 중심의 정치 체제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지방 행정 구역과 관직명을 중국식으로 바꿔 중앙과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과 외교적 관계를 강화하여 국가적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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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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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천왕이 실시한 진대법은 무엇인가요?
고국천왕이 194년 실시한 진대법은 빈민 구제 고물 대여 제도입니다. 흉년이나 춘궁기에 가난한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입니다. 특히 가족이 없거나 늙고 병들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봄과 가을까지 관청에서 보관하던 곡식을 백성에게 빌려주고, 가을 추수 후 다시 갚는 제도입니다. 진대법은 고려시대 의창, 조선시대 환곡제로 계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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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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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혜공왕이 피살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신라 중대 무열계가 왕위를 독점하면서 전제 왕권은 강화되었지만 진골 귀족들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결국 경덕왕 이후 여러 차례 귀족들이 반란과 정치적 혼란을 겪엇고, 왕권이 약화된 상황에서 780년 이찬 김지정에 의해 혜공왕이 피살되었습니다. 특히 혜공왕이 성장하면서 기강이 문란해지고, 음악과 여색에 빠져 인심을 잃었다는 평가가 당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김지정은 무리를 모아 궁궐을 포위하고 반란을 일으켜 혜공왕과 왕비를 살해했습니다. 이후 상대등 김양상(이후 선덕왕)과 이찬 김경신이 군사를 일으켜 진압했으나 김양상이 왕위에 오르며 무열계 왕위가 단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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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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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시대가 처음 시작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신라말 왕위 다툼과 진골 귀족간의 왕위 쟁탈전으로 왕권이 약화되고,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호족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의 수탈로 백성들은 몰락하고, 곳곳에서 봉기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견훤이 900년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우고, 901년 궁예가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우면서 후삼국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로써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 세나라가 한반도에 병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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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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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이 설치한 흑창이라는 기구는 무엇인가요?
흑창은 918년 고려 태조 왕건이 설치한 빈민 구제 기관입니다. 국가에서 곡식을 비축해 두었다가 흉년이나 춘궁기 등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시기에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거두는 제도입니다. 이는 고구려의 진대법을 계승한 제도로 백성들의 생활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이후 성종 때 의창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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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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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집과 막집의 대표적인 차이는 무엇인가요?
막집은 구석기 시대, 움집은 신석기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입니다. 막집은 땅을 파지 않고 평평한 땅 위에 나뭇가지, 풀 등을 재료를 사용하여 간단하게 지는 집이며, 이동 생활에 적합한 임시 거처입니다. 반면 움집은 땅을 움푹 파서 그 안에 기둥을 세우고 풀이나 나뭇가지, 갈대 등으로 지붕을 덮여 정착 생활에 적합하며, 보온을 위해 화덕을 설치하였습니다. 따라서 움집은 막집에 비해 견고하고 영국적으로 지은 주거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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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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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부흥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뭘까요?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 의해 660년 멸망하였지만 이후 복신, 도침, 풍, 흑지상지 등이 부흥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흥 운동 세력들 사이의 권력 다툼과 암살이 이어지면서 내부 결속이 약화되었습니다. 또한 왜의 군사적 지원이 있었지만 663년 백강 전투에서 패배하여 재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이에 비해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은 조직적이고 강력한 부흥군을 압박하여 주류성, 임존성 등의 거점을 함락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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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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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우수했던 시기는 언제인가요?
한국 역사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우수한 시기에 대해 조선 초기 세종대왕 시기를 말합니다. 그 근거는 훈민정음 차제를 비롯해 측우기, 앙부일구, 혼천의 등 과학 기술의 혁신과 음악, 문학, 예술의 발전 등 독자적 문화가 발달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 원료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독창적인 예술과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불교, 유교의 수용과 융합되었으며, 고분벽화와 석탑과 불상, 금관을 비롯한 공예 작품 등 많은 예술품을 남겼습니다. 특히 삼국 통일 이후 통일 신라는 삼국의 문화를 융합하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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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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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의 유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묵은 일본의 무로마치 막부시대 중기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생선살을 으깨 대나무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구워먹는 형태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가마보코라고 부릅니다. 고문서에는 헤인안 시대에도 등장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18세기 조선 후기 일부 기록이 등장합니다. <소문사설>에 "가마보곶"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리법이 달라 오늘날의 어묵과 다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어묵이 널리 퍼진 것은 일제 강점기 부산을 통해서입니다. 부산을 중심으로 발전해 대중적 인기를 얻는 반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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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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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해마다 행사를 할때 보이는데 어떤 의미를 가지고 하는 행사인가요,
짚신밟기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퐁숙으로 제액초복(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름)과 화합을 위한 마을 공동체 행사입니다.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짚신밟기는 일반적으로 지신밟기와 같은 맥락의 행사입니다. 마을이나 집터의 땅신을 밟아 잡귀와 액운을 쫒고 가정의 한 해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전통 민속 의례입니다. 땅에 깃든 부정한 기운이나 잡신을 밟아 진압하고, 복과 풍요, 마을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농악대나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돌며, 풍물을 올리고 마당이나 뜰, 집터를 밟으면서 덕담과 노래, 춤을 곁들여 의식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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