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즐겨먹는 잔치국수의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잔치국수는 6세기 중국의 북제의 '탕변연'(탕국수, 수제비 형태의 국수) 기록에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문선제 시대 황제가 득남 잔치에서 국수를 대접했습니다. 길고 둥근 면발이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고려말 조선 초 환갑, 돌 결혼식에 귀한 메밀 국수를 대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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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천왕이 부자상속으로 전환을 했는데 부자, 즉 아들이 없게 되면 왕자리는 어떻게 되었나요?
고구려는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부자상속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2세기 고구려의 고국천왕은 형제 상속에서 부장 상속으로 원칙을 정립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없을 경우에는 형제, 또는 가까운 친족에게 왕을 물려주는 방식도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국천왕 다음에는 산상왕, 산상왕에서 동천왕은 형제 상속이며, 동천왕에서 신대왕은 부자 상속의 첫 사례입니다. 이후 부자 아속이 정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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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용포들은 세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입고 버리는 방식이었는지요?
용포는 비단, 금실, 정교하게 자수로 장식하여 만든 고급 옷입니다. 따라서 세탁을 하면 색이 바라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급니다. 일반 옷과 비슷하게 물빨래를 하거나 두드리는 것은 제한되었을 것입니다. 대신 그늘에서 잘 말려 냄새를 빼거나 향초 등을 넣어 냄새를 줄이는 방식도 활용하여 관리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용포와 같이 화려한 옷은 의식, 예복에 사용하기 때문에 자주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잠시 입고 보관하는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입고 버린 것은 아니며, 일정 기간 사용하고 폐기 하는 형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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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의 소통을 위한 동ㆍ서양간 제사장들의 괸녕과 행위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초창기 동양의 제사장들은 조상, 천지신 중심으로 교감하며, 가문의 혈통 보존과 조화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제사 의식을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숭배 대생은 올림푸스 신처럼 다신이고, 제사장은 신들의 변덕스러움을 중재하는 역할을 중시합니다. 전문 사제단 등의 제사장은 동물을 희생시키고 신탁을 해석하는 행위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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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생년월일로 사주를 보게 되는데 이거 믿어야 하나요?
'사주'는 본질적으로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검증 불가한 것입니다. 대규모 통계 연구에서 사주는 예측력은 무작위 수준일 뿐입니다. 맞는 부분도 있지만 모호한 일반론으로 느껴지는 '바론 효과'입니다. 그리고 초성, 대길일 등에 의존하면 합리적 판을 못하고, 실패 위험도 높아집니다. 따라서 사주는 심심풀이나 심리적 위안을 위해 재미로 생각하고, 노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성공율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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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발췌분) 기록되어 있듯이.....
성경전서의 요한복음 20장 29절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에서 '복되도다'는 영적 행복과 하나님의 은혜 받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토마스의 '보는 믿음'과 대비하여 순전한 믿음을 가진 영적 행복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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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은 무엇인가요?
일제가 식민사관은 우리 역사를 왜곡, 부정하여 한국인게 열등감을 심화시켜 효율적으로 식민 통치를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행한 역사 정책입니다. 식민사관은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특히 정체성론은 한국인은 고대 시대에 머물러 중세 봉건사회가 존재않고 근대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민족의 열등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역사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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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신문과 제국신문의 차이는 무엇이 있을까요?
황성신문은 남궁억, 제국신문은 이종일이 1898년 발행한 근대 신문입니다. 황성신문은 국한문 혼용으로 주로 유림이나 지식인을 독자로 하였으며, 제국신문은 순한글로 서민과 부녀자를 주요 독자층으로 했습니다. 즉, 황성신문은 보수적 개혁, 제국신문은 진복적 계몽을 이념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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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조선교육령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일제는 국권을 피탈하고 교육을 통해 영원히 식민지하고자 1911년 제 1차 조선교육령을 제정했습니다. 1차 조선 교육령의 핵심은 우민화 교육과 차별 교육을 통해 한국민을 식민지 노예로 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일제는 일본인과 다르게 한국인에게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을 통해 우민으로 만들어 일 잘하는 노예로 만들려는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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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연구초의 작성 배경은 무엇인가요?
일제 강점기 일제는 식민사관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왜곡, 부정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민의 열등감을 심화시켜 효율적으로 통치하려 했습니다. 이에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역사를 통해 민족 의식 강화를 통해 식민사관을 극복하려 했던 것입니다. 특히 신채호 선생은 상고사 연구를 통해 민족의 주체적 역사를 재구성하고 했습니다. 따라서 논문 <조선사연구초>에서 이두 해석, 삼국사기의 동서양 혼용 오류 교정, 삼국지동이전의 왜곡 바로잡기, 평양과 패수 위치, 묘청의 난 평가 등의 6개의 6개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을 강조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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