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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떼 왕과귀족 일반백성이 마시던 술이 달랐다고 하던데 어떻게 나뉘어서 먹었나요?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에는 서민들은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 "잔치 때 마시는 술은 맛이 달고 밫깔이 짙으며 사람이 마셔도 별로 취하지 않는다"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미루어 보면 고려에는 청주, 탁주, 예주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궁중에는 양온서라는 기관을 두고 왕이 마시는 청주와 법주를 질항아리에 넣어 명주로 봉해서 저장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왕은 청주를 마셨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김극기는 '들합에는 탁주 채워 있네.'라 하였고 이규보의 시에는 나그네 창자를 박주로 푼다'라고 하였는데, 박주는 탁주이며 이규보 자신도 가난할 때에는 박주를 마셨다는 의미로 서민들의 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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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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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아주오래전부터 좌파라는 말을 안좋은 이미지로 사용한것 같은데 좌파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 만들어진 언어인가요?
좌파와 우파는 프랑스 혁명 당시 1789년 소집된 국민의회 의회 자리에서 기원했습니다. 의회에서 의장석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앉은 왕당파가 앉고, 왼쪽에는 공화파가 앉은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왼쪽에 앉은 사람들이 진보적인 좌파, 그리고 오른쪽에 앉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우파에 해당됩니다.그리고 공화파가 장악한 1792년 프랑스 국민공화에서도 왼쪽에 급진 좌코뱅 의원들이 오른쪽에 보수적인 온건 지롱드당이 앉았으며, 가운데는 중간파인 마레당이 자리잡은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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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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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늬토기에서 빗살무늬토기로 넘어간게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는 빗살무늬토기입니다. 그런데 빗살무늬토기 보다 앞선 시기에 이른 민무늬 토기가 제작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른 민무늬토기가 자주 깨지는 것을 보고 토기 표면에 덧댄 덧무늬 토기를 제작했으며, 여기게 우연하게 줄무늬를 넣어 더욱 단단해 지는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음각의 홈을 따라 토기를 따라 토기를 약하게 만드는 공기 등이 배출하면서 더욱 단단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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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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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기원은 어디서 였는지 아실까요?
화폐의 기원은 물물 교환에서 발생했습니다. 원시 시대 직접 물물 교환이 주된 거래 방식이었지만 번거로운 때문에 효율적으로 거래를 위해 화폐가 등장했습니다.처음에는 소금, 조개 껍대기와 같이 물품 화폐가 활용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동기 시대에 금속 화폐가 나왔습니다. 금속은 어느 지역이든 귀한 물품이고 오래 보관할 수 있어 애용되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금속 화폐는 기원전 7세기에 리디아에 만들어진 호박금 주화입니다. 이 주화는 금과 은의 자연 합금인 일렉트럼으로 만들어졌으며, 사자 머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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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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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몽골의 인도침입과 이로인하여 무굴제국과 어떻게 연관되는건가요
무굴제국을 건국한 바브르의 아버지는 티무르, 어머니는 칭기즈 칸의 혈통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페르가나 안디잔 출신으로 모험가로서 여러 차례 전투 경험이 있었으며, 1504년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왕국을 수립하는데 성공했습니다.그는 1526년 인근 지역을 정복한 뒤 몰락한 로디 왕조를 무너뜨리고 무굴제국을 건국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르칸트 지역을 차지하여 티무르제국의 영고아을 되찾으려 하였습니다. 무굴 제국의 '무굴'은 몽골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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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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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당시 조선의 호랑이을 사냥하고 이 호랑이의 내장을 상품화한건가요
<산조실록>의 선조 26년(1593)에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와 호랑이를 많이 잡았다."와 <징비록>의 권3 이순신 기록을 보면, "일본군들이 호랑이를 잡아 먹는데, 호랑이 가죽을 벗겨내어 장궁의 호로를 만들었다."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 내장 기관, 즉 담낭, 간, 심장이 약용 가치가 있다고 여겨 약재로 상품화하였습니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호랑이 고기 때문에 아들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에 쓸 호랑이 고기나 내장을 소금에 절여서 보내도록 무장들에게 지시한 서장이나 호랑이 고기가 도착할 때마다 도요토미가 무장들에게 내린 감사장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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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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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에 약탈을 한 왜구는 어디지역의 출신인가요
고려말과 조선 초기 시대에 왜구들의 약탈 근거지는 규슈 지역, 특히 대마도입니다. 이 지역은 토지와 환경이 협소하여 농업 생산량이 빈약하고 경제적으로 곤궁하였습니다. 일본은 당시 남북국 시대로 천황 2명이 서로 대립하면서 일본 정세가 불안했으며, 일본 본토로 부터 식량을 조달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시기에 자주 한반도를 노략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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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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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멸망당시 의자왕이 도움을 요청했던 일본 야마토정부가 도움을 안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일본서기>의 천무천왕에 20년(660)에 "백제왕 의자왕이 사신을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였다."란 기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 백제본기 의자왕조에 따르면 '의자왕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독착하기 전에 백제가 멸망하였다.'라고 기술한 것을 보면, 사신이 구원을 요청하던 중 백제가 멸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그리고 백제 좌평 복신은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에 들어가 왜에 사신을 보내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을 보내줄 것과 군사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곧이어 백제로 돌어온 부여풍은 왕으로 추대되어 본격적인 부흥운동을 전개합니다. 그리고 663년 일본은 2만 7천명의 대규모 군사를 보내 지원했습니다.그리고 백강 입구에서 백제, 왜 연합군과 나당 연합군 사이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으며, 이 전쟁에서 나당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백제부흥운동이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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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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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정사를 쓴 진수가 편찬한 동의전은 무슨 책인가요
진수의 <삼국지>는 위, 촉, 오 세 국가의 역사를 다뤘습니다. 그리고 '동이전(東夷傳)'은 삼국지의 마지막 부분으로 동양의 여러 민족과 그들의 고대사를 기록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부분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 예, 한, 왜인 등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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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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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언제부터 일본으로 귀속되는건가요
대마도가 일본의 통치 하에 들어간 시기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이르는 에도 막부 시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받친 우리 땅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은 그 땅을 무력 강점했지만 결사 항전한 대마도 의병들이 이를 격퇴했고 의병 전적비가 대마도 도처에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인 1870년대 일본 메이지 정부는 대마도를 일본에 편입시켰습니다. 1868년 대마번(藩)이 메이지 정부에 올린 봉답서를 보면 대마번이 조선의 번속국이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조선에 대해 번신(藩臣)의 예를 갖추어 수 백 년 간 굴욕을 받았으니 분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의 서계부터 조선이 주조해 준 도서 대신에 일본 조정이 만들어주는 새로운 도장을 사용하여…” 이를 통해 조선 후기의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양쪽에 예속된 양속 관계였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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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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