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당 최남선은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를 지은 민족 지식인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말에 친일파로 변절합니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이른바 문화통치의 영향과 실력양성의 실패로 최남선 등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자치운동을 전개합니다. 최남선은 민족불구론을 주장하며 조선 민족의 결함을 강조하고 일본의 지배를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1927년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면서 친일전 성향으로 전향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일제가 본격적인 침략 정책을 추진하자 그는 일본의 문화동화론을 지지하며, 일본 신도 보급과 학병 지원 권유 등 친일 활동에 적극 나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