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를 봤는데 고려장에 관한것입니다
고려장은 고려시대에 늙거나 병든 부모를 산에 버리는 장례 풍습을 말합니다. 주로 문학 작품이나 전설상에 등장하지만 실제하지 않은 장례 풍습입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식민사관에 따라 우리 역사를 왜곡, 부정하고 열등감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오히려 고려는 반역죄 못지않게 불효죄를 엄격하게 처벌했습니다. 따라서 고려장 같은 장례 풍습은 있을 수 없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무협에서 나오는 오대세가 구파일방은 실존하나요?
오대세가와 구파일방(九派一幇)은 중국 무협소설과 영화의 가상 무술 문파들입니다. 구파일파는 소림사 등 9개 문파를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대만의 무협 소설가 와룡생이 처음 언급했습니다.그리고 오대세가(五大世家)는 남궁세가 등 5개 무술 가문으로 무협 소설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역사적 근거는 전무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중국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나라인가요?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2004년 헌법 개정을 통해 사유 재산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헌법 제 13조에 따르면 "적법하게 취득한 사유 재산은 침해될 수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2007년 '물권법'이 통과되어 개인의 재산 소유권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그러나 알 수 없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여전히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이고, 법적으로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사유 재산권이 위협받을 여지는 충분합니다.
5.0 (1)
응원하기
한국전쟁이 3년간의 긴 전쟁임에도 자세한 전투과정이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6.25 전쟁은 다른 전쟁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2차 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 끼인 전쟁이라는 인식이 큽니다. 따라서 주목을 덜 받았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을 냉전의 일부로 인식하고 독립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어 잘 알려 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2년 남짓 참호전으로 지루하게 전개되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2차세계대전 당시 T34가 최고의 전차로 불린 배경이 무엇인가요
T-34 전차는 2차 대전 중 소련의 주력 전차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T-34/76은 76.2mm 전차포를 장착했으며, 후속 모델인 T-34/85는 85mm 전차포를 장착했습니다. 이는 강력한 화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500마력의 속도와 전면 장갑 두께가 45mm로 당시 독일 전차들에 비해 우수한 방호력을 보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독일 장군 클라이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전차"라는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마한, 변한, 진한이 세워진 위치는 어떻게 되나요?
삼한의 위치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우선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도 지역을 말합니다. 변한은 주로 부산과 경남 일대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진한은 대구와 경주 일대에 해당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미국장군이 한국전쟁당시 최고의 전력을 갖춘 북한사단은 어디였나요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평가한 최고의 북한군 부대는 제 105전차 여단입니다. 이 여단은 소련제 T-34 전차를 주력으로 사용하며, 개전 초기 서울을 점령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나라가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한 때는 언제 인지 궁금해요
우리나라가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48년 1월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5회 동계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이 때 스피드 스케이트 종목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7월 영국 런던 올림픽에 복싱, 역도 7개 종목에 출전하여 동메달 2개를 획득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나라 역사상 역대 장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때의 강수량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우리 나라 최대 홍수로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입니다. 이 홍수는 7월과 8월에 걸쳐 전국적으로 발생하였는데, 서울과 경기도에 가장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을축년 대홍수로 한강의 물줄기가 변경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서울에서만 사망자가 647명, 송파동 일대가 침수되면서 풍납 토성과 암사동 선사 주거지가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유럽에도 왕의 이름을 못쓰게하는 문화가 있었나요?
피휘 문화는 동양에서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만 있었으며, 베트남과 일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럽 지역에서는 오히려 부모나 조상의 이름을 자손이 물려받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 때문에 유럽의 뼈대 있는 귀족 집안 가계도에서 특히 장남의 이름을 죽 거슬러 올라가보면, 수 대~ 심하면 십수 대가 계속 같은 이름이거나 이름 두 개가 번갈아 나타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군주의 이름을 백성이 그대로 쓰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워낙 동명이인 군주가 많다보니 이를 구분하기 위해 '아무개 몇 세' 등으로 표기합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