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가 소설이라는게 사실인가요?
<삼국지연의> 명나라 시대의 나관중이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혼합된 소설로 많은 부분 실제 역사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도원결의, 제갈량의 동남풍 등 모두 허구이며,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활약도 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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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우체국은 어디인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은 인천 우체국입니다. 인천 우체국은 1884년 11월 18일 우편 시설을 갖추고 업무를 개시했습니다. 현재는 인천중동우체국이라 불립니다. 1884년 4월 고종이 우정총국을 설치하라는 칙령을 내렸을 때, 우편업무를 실시할 대상으로 선정된 지역은 서울과 인천 두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서울에서 접수한 우편물을 인천으로 보내고, 인천에서 접수하거나 인천에 도착한 우편물을 서울로 보내는 것이 우정총국의 주요 업무였습니다. 그런데 먼저 서울에 우정총국을 설치하여 그러한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기에 인천에 분국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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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민족주의란 민족이라는 소속감이나 애착감을 강조하는 의식입니다. 민족은 혈통, 언어, 문화 등 종족적 요소를 공유하는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근대 이전 민족주의는 중세 크리스트교 중심의 보편주의 세계관이 해체되면서 나타납니다. 이 시 기에는 지역적 정체성이 강화되었고 특정 지역이나 민족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백년전쟁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각각 민족주의 강화됩니다.19세기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저항 민족주의가 나타나고, 빈체제에 대한 반발로 독립 운동과 통일운동이 확산되면서 민족주의가 대두됩니다. 예를 들어 독일과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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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 트는 관습은 언제 사라진것일까요?
상투는 우리나라 남자들의 전통적인 머리 모양입니다. 그러나 1895년 을미개혁으로 단발령이 시행되면서 사라지는 계기다 되었습니다. 단발령은 강압적으로 시행되어 을미 의병이 일어나는 등 반발이 있었으며, 1896년 2월 아관파천으로 단발령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서양식 문화가 확산되면서 점차 상투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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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음식인 김밥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것인지요?
김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유래설, 일본 김초밥 유래설로 나눌 수 있습니다. 15세기 경상도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서 김에 대한 기록과 근대시대에 김으로 밥과 반찬을 먹는 주장이 있습니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 복쌈을 싸서 먹는 풍습이 현재의 김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일본 김초밥(노라마끼)는 일본의 관동 지방이 원조입니다. 노라마끼는 김으로 밥과 재료를 싸서 만드는 과정에서 유사합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도시락 문화와 함께 한국에 소개되어 한국식으로 변형된 것이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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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사리라는 말의 뜻이 궁금하여 문의 드립니다.
"담사리"는 전라도 사투리로 '깔담사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다 쇠족을 긇이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집안일을 도와주는 어린 머슴입니다. '안담사리', '사리; '도사리', '작남' 등으로 불리며, 모심기 철에 '진서자리;를 통해 상머슴과 깔머슴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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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시대에는 다들말들이 통했을까요?
삼국의 언어는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로 구분되고, 각각의 언어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퉁구스 게 언어 계통이라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즉 삼국의 언어는 공통의 조상언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완전히 일치하지아는 않아도 어느정도 의사소통을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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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과거 사극을 보면 주로 남자들이 이마를 가리는 띠를 둘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망건(網巾)은 조선시대에 상투를 틀 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마에 두르는 그물 모양의 물건입니다. 당(當), 편자(片子), 앞과 뒤로 구성됩니다.망건은 명나라에서 전래되었지만, 조선에서토착화되었습니다.주로 결혼한 남자들이 사용했으며, 상류층에서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서민들은 말털을 엮어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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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과거 사극들을 보면 신녀가 꼭 나오더라고요, 주몽이라는 드라마는 고조선 이후 부여의 얘기인데요
신녀(神女)는 무당, 무녀로 불리며,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녀는 주로 여성으로, 신령과의 교감을 통해 예언을 하거나, 병을 치유하고, 제사를 지내는 등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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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의 막상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무속이나 주술을 믿는다고 하던데, 과거 우리나라에도 신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문명으로 수립된 국가들은 점을쳐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입니다. 하물며 유교 국가인 조선도 점을 치는 관청으로 관상감(觀象監)이 있었습니다. 관상감은 천문, 역법, 지리, 점복 등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조선 초기에는 서운관(書雲觀)이라고 불렸습니다.그러나 현대 국가에서 점복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초래합니다. 우선 점복 자체가 지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원리와 맞지 않으며, 책임 정치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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