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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로 몽골의 세계 정복은 실패하게 되었나요?
징기즈칸이 1206년 몽골 제국을 건국하고, 빠르게 영토를 확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차지한 땅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관리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각 지역의 문화적 차이와 내부 갈등 등으로 제국의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몽골제국의 말자 상속제로 인해 후계자 간의 갈등이 있어 여러 칸국으로 분열되어 통일 제국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그리고 너무 빠른 확장으로 인해 정복지의 몽골화와 안정적 통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군대와 자원이 분산되어 본토 방어도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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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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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 문화가 거의 사라진거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 존재하는 전통 습관은 무엇이 있을까요??
전통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따라서 일부 남아 있는 전통 습관과 문화를 잘 보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우리나라는 인사할 때 허리를 굽혀 인사합니다. 또한 어른에게 공손하게 말하는 존대말, 두손으로 물건을 주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예절입니다. 어린이 먼저 수저를 드는 것, 설날과 추석 명절에 가족이 함깨 모여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것도 소중한 문화 유산입니다. 그리고 겨울을 대비하여 김장을 하거나 한복을 입는 전통도 아직 유지하는 전통입니다. 또한 한옥과 온돌 시설과 아리랑, 판소리, 씨름, 해녀, 장담그기 등 무형 문화재와 강릉 단오제와 같은 민속놀이도 지켜야 할 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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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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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표현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나요?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표현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79년 박정희 정권 시절 신민당 총재로서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하던 상황에서 남긴 말입니다.당시 김영삼은 유신 독재에 저항하다가 여당인 민주공화당 의원들에게 의원직을 박탈항했습니다. 이 발언은 부마 항쟁으로 이어졌으며, 10 26사태가 일어나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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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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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취업에 정말 도움이 되나요?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자격은 공기업 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많은 공기업들이 서류 전형에서 가산점이나 우대사항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2급 이상은 5급 공무원, 외교관, 3급 이상은 교원 임용 시험에 반영됩니다. 또한 철도공사, 신용보증기금, 국민건강보험 공단, 국민연금공단 등 서류전형에서 최소 2등급 이상을 받으면 가산점으로 반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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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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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은 언제 생긴건가요? 현대시대인가요? 조선시대인가요?
청계천은 원래 자연하천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한양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길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정비한 것은 조선시대 태종 때인 1406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준설과 둑을 쌓는 등 치수 사업으로 전개되었습니다.이후 세종, 영조 등 여러 왕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정비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청계천은 2000년대 복원 사업으로 복개한 것을 철겨하여 현재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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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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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그레이엄의 복음 배경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전세계 180여 개국에서 2억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고 방송, 위성,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22억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달합니다. 라디오, 텔레비전,잡지, 영화, 인터넷 등 시대의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복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확하고, 신뢰와 일관성이 있어 호응을 얻습니다. 게다가 국가적 위기때마다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미국 대통령 등 사회 지도층과도 긴밀한 소통해 영향력을 확장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되어 빌리 그레이엄의 복음 사역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폭넓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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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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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대대로 가문의 종손이 집안 제사를 이끌어가고 재산도 많이 물려받는데, 집안에 아들이 없고 딸만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까지는 윤회 봉사를 통해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냈으며, 상속도 균분 상속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집안의 종손이 제사를 주관하였으며, 재산도 장자 상속이 일반적입니다. 게다가 아들이 없을 때 친족 중에서 양자를 들여 가계를 잇고, 제사아 재산을 상속하였습니다. 양자도 들이지 못할 경우에는 4촌 이내의 혈족에게 가문의 재산의 제사권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현행 민법 상으로는 아들 딸 구분 없이 모든 자녀가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받습니다. 제사를 누가 주관하는지는 가족간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여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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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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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지낼때 상차림에 정해진 규칙이 있다고 하는데, 제사상 차림규칙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건가요?
고대 자연 숭배에서 제사상의 규칙이 전해졌으나 유교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체계화 됩니다. 초기에는 조상이나 자연신에게 계절 음식을 올리는 토속적 제사였으나 고려 중기 이후 유교 의례서인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의 영향으로 상차림 방식이 규범화된 것입니다. 특히 조선 시대 성리학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면서 제사 의례가 민간까지 널리 퍼지고, 상차림 규칙도 보편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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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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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면서 좋은일도 많고 힘든일도 많은데, 이럴때 마다 사용하는 "고진감래" 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생겨서 유래가 된건가요?
고진감래(苦盡甘來)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인생에서 힘든 시기와 좋은 시기가 번갈아 온다는 삶의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후한서> 등 중국 고전에서 전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원나라 문학가 도종의나 북위 시대 고환 등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인물들의 일화에서 인용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시대 강감찬 장군 등 역사적 인물의 고난 극복 이야기와 함께 전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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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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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의 역사배경은 무엇인지요?
광개토대왕릉비는 아들 장수왕이 부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414년 세운 비석입니다. 당시 수도인 국내성 인근에 세웠으며, 현재는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습니다. 고구려의 건국신화, 광개토대왕의 업적, 그리고 수묘인을 기록한 가장 방대한 금석문으로 4~5세기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고구려 대외 원정을 이해하는 데 핵심 사료입니다. 고구려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강대국으로 성장하며 주변국과 관계에서 주도적인 위치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비석입니다.그러나 일부 구절 해석을 둘러싸고 한일 간에 첨예한 논쟁이 있습니다. 일본은 왜가 391년 바다를 건너 백제와 신라를 정복했다고 해석하여 임나일본부의 근거로 삼고자합니다. 이는 일본의 조선 침략을 명분으로 활용합니다. 하지만 한국 학계는 고구려가 왜를 격퇴하고 신라를 도운 것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19세기 비문을 일부를 훼손하거나 조작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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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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