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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다들 당연시 살아가고 있는 시대인데 이것에 대한 반발을 갖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민주주의는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정치 체제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완전무결한 제도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의제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견이 완전하게 반여되지 못하며, 상위 1%의 거대 자본 등의 정치 과정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힌 정보가 왜곡되고 선동의 위험이 존재하며, 다수결의 원칙은 양극화와 포퓰리즘이 만들어 내기도합니다.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여 민주주의 제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거 이오에도 온라인 공론장 같은 것을 통해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민주주의도 완벽한 제도는 아닙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고 발전시키면서 민주주의를 성속하게 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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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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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은 어떤 방식으로 반란을 막았나요?
몽골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대제국입니다. 몽골제국은 반란을 통제하기 몇가지 통치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칭기즈칸 아래 몽골의 통치 원칙은 이르반 공포 정치와 보복 정책에 철저했습니다. 즉 반란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한 것입니다. 이는 전역에 소문으로 퍼져 다른 지역의 반란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또한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감시하고 관리하였습니다. 이러한 체계는 "야사"라는 통일 법령 체계 아래 운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엄격한 군사 규육과 변화 없는 지휘 체계, 지역 엘리트를 회유하고 분할 통치한 것도 반란을 막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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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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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관저에 다다미방, 히노끼탕 설치가 된게 맞았네요..
2025년 10월 국정 감사에서 대통령 관저에 히노끼탕과 다다미방이 실제로 설치되었다는 사실은 22년 관저 리모델링을 담당한 21그램 시공업체 대표의 증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국가 최고 상징 공간에 일본 전통 문화를 설치하는 행위에 대해 국민 공감대를 얻기는 어려운 사안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 취향과 국가 상징, 세금 사용의 경계 그리고 공공 공간의 문화적 정체성이 모두 얽혀 있는 복합적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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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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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이 살아 생전에도 수양대군을 견제했었나요?
문종의 생전에는 수양대군을 적극적으로 견제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문종은 수양대군의 능력과 충심을 높이 평가하여 진법 제작과 국가적 대사에 수양대군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켰습니다. 문종이 김종서를 신임한 이유는 좌의정으로 어린 국왕을 보필할 실질적 권한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단종이 국왕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조정의 정치 안정을 유지할 목적으로 한 부탁이었습니다. 즉, 문종이 김종서에게 단종을 부탁한 것은 수양대군을 견제하려는 의도보다는 신권이 강했던 시기에 어린 임금을 보호하도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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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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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역사중에서 가장 번성하였던 시기는 언제였을까요?
고대 이집트가 가장 번성한 시기는 신왕국시대입니다. 신왕국은 제 18왕조에서 20왕조로 이어지는 시기로 기원전 약 1550~1077년으로 추정합니다.신왕국 시대는 누비아 남부(수단 북부)와 레반트(팔레스타인, 시리아) 까지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대표적 파라오는 하트셉수트 여왕,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텝 3세, 람세스 2세가 있습니다. 특히 람세스 2세 당시에는 히타이트와 카데시 전투를 벌여 세계 최초의 평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또한 테베를 중심으로 신전 건축과 왕가의 계곡에 많은 파라오 무덤이 건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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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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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외교사절단 이라는 단체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네요..
사이버외교사절단은 일명 반크(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라고 불립니다. 주로 역사 왜곡 등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간 외교 단체입니다.반크는 1999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디지털 외교관을 양성해 전세계 한국의 역사, 문화, 영토를 총보하고 왜곡된 정보를 수정하는 활동을 합니다. 청년, 청소년 자원봉사자로 구성되며 1만명 이상이 참여합나다. 그동안 독도, 일본해에 대한 일본의 왜곡 사실에 대해 대응을 주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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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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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독립기념관장 교체는 강제적으로 어려운가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해임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절차상 매우 제한적이며, 정치적 부담이 큰 것으로 판단됩니다. 독립기념관 법에 근거하면 독립기념관장은 국가보훈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으로 해임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고, 또한 행정 감사나 소송 절차 및 결과에 따라 해임이 현실화 될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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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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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분제는 사회 안정에 기여를 했다고 볼수 있나요?
조선시대 신분제는 사회 안정에 일정 부분 기여했습니다. 황금기인 조선 초기에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가 엄격하였으며, 이는 사회 질서 유지와 국가 안정, 통합에 기여했다고 평가됩니다. 신분제는 각 계층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여 부국강병과 사회적 예측 가능성을 높입니다.하지만 신분제는 차별과 불평등,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낳기도 합니다. 또한 자유와 능력 발휘를 제약하여 사회 발전의 장애가 됩니다. 조선 후기에는 실학, 동학, 천주교 등의 확산으로 양반 중심의 신분제가 동요하여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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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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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사의 '공순 아찬 신도비'는 누구의 비석이라고 밝혀진 것인가요?
경주 남산에서 발견된 '공순 아찬 신도비'는 신라 시대 8세기 당시 공순이라는 이름과 아찬이라는 관품을 가진 인물의 신도비입니다. 신도바 자체가 죽은 사람의 행적과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기 때문에 신라의 진골 귀족(왕족) 가운데 한 사람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2022년에 경주 남산사 정원석에서 다시 발견되면서 '공순 아찬 신도비'임이 확실해졌습니다. 비문의 약 100자 중 80자가 판독되어, 공순이 태종 무열왕의 손자인지 여부 등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신라 귀족 계층 출신임이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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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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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주요 지역들은 학계에서 충청도라 하나요? 아니면 전라도라 하나요?
백제는 본래 한강을 중심을 건국되어 성장한 고대 국가입니다. 전성기인 4세기 때는 황해도와 전라도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이후 공주, 부여로 옮기면서 충청도가 백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즉 역사학계에서는 초기에는 한강 유역, 그리고 충청도 지역으로 중심지가 이어지고, 전라도 지역까지 지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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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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