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의 옷 색은 어떻게 정해진건가요?
조선시대 국왕의 곤룡포에 대한 기본 원칙은 명나라 체계 질서 원칙에 따릅니다. 명나라 황제가 황색 계열의 곤룡포를 입는다면, 조선 국왕은 명나라 체계에서 친왕급 지위로 간주되어 기본 색은 적색 계열입니다. 다만 고려, 조선 교체기 태조 이성계는 파란색 용포를 입었습니다. 곤룡포는 앞, 뒤, 어깨에 용을 그린 곤룡보를 붙이고, 익선관과 옥대를 두르는 형식입니다.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나서 황제를 자처하며, 곤룡포와 의복에 황색과 금색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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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배경에 어느정도 역사적 사실인가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단종은 조선의 6대 국왕이며, 호장 엄흥도, 권신 한명회 등이 모두 실존인물입니다. 단종은 12세에 즉위하나 삼촌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잃고 이후 폐위, 유배되어다가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사사됩니다. 그리고 엄흥도는 단종의 죽음을 목격하고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하지만 엄흥도의 사회적 지위와 주민과의 관계, 마을 생존을 위해 단종을 유배객으로 받아오는 것, 단종을 엄흥도가 죽이는 방식 등은 허구적 창작 내용입니다. 인물, 배경 등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감정, 동기, 관계 등은 영화적 상상이 섞인 허구입니다. 비슷한 소재로 만든 영화로는 <관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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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떠나고 어떤 단체들이 상하이에서 활동했나요?
1932년 상해 사변에서 승리한 일본은 상하이 지역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은 상하이를 군사, 행정적 지배 구조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따라서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들이 상하이를 거점으로 활동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인애국단도 1933년 해체되었으며, 상하이안인청년당도 임시정부 이등 등으로 공개 활동이 줄어들며, 지하 네트워크로 잔존했을 정도입니다. 상하이한인여자동맹도 1933년 3.1운동 기념 성명서 발표 등의 활동을 했으나 점차 약화, 은폐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상하이한인교민단도 윤봉길 의거 이후 지도부가 상하이를 떠났습니다. 즉, 상하이 사변과 윤봉길 의거 이후 상하이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여러 독립운동 단체는 임시정부를 따라 떠나거나 지하, 은폐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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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왜 발해의 땅을 차지하지 못했나요?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였기에 국호도 '고려'로 하였습니다. 태조 왕건은 북방정책을 통해 옛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영토보다 더 큰 영토를 지배한 국가가 바로 발해입니다. 발해 역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를 자처했습니다. 따라서 고려는 발해에 대해 우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918년 고려가 건국할 당시 916년 거란족이 세운 요가 성장했습니다. 요는 926년 발해를 멸망하였으며, 중국의 화북의 연운 16주까지 차지한 정복 왕조였습니다. 이후 960년 5대10국을 통일한 송나라도 요와 대결 구도였습니다. 하지만 1004년 전연의 맹을 통해 송나라는 요에게 평화관계를 맺을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따라서 고려가 거란이 세운 요를 제거하고 발해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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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중에 백성들을 위해 헌신한 왕은 어떤 왕일까요?
조선시대 국왕 가운데 백성들을 위해 헌신한 왕으로 대표즌 세종대왕입니다. 세종 대왕은 백성들이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했습니다. 또한 농사 기술을 개선하기 위해 <농사직설>을 편찬하여 보급했으며, 공법을 개정하여 세금을 줄였습니다. 백성들의 질병 치유를 위해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등을 편찬하여 보급했습니다. 그 외에도 농사에 필요한 측우기를 개발하고, 자격루, 앙부일구와 같은 시계를 보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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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가고 봄이오내요 요즘들어 과거의 추억들이 많이 생각는데 이유는 멀가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일조량이 늘어나고 몸이 천천히 활발해지면서 감정의 회전이 일어납니다. 이런 변화가 올때 기억은 새로운 감정과 섞여서 그 때 이야기들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현재보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의 기억이 특별하게 느껴지며 정리됩니다. 과거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계절 변화에 따라서 나이, 시간과 함께 정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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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란게 있을까요(문자16자방지)
'윤회'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에서 사람이 죽어서 다시 다른몸으로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생전에 한 행위(업)에 따라 다음 생이 달라진다고 보고 끝없는 생사의 반복 속에서 윤회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과 의학 입장으로는 의식은 뇌와 신체의 작용에서 나오고, 뇌가 멈추면 의식도 끝난다고 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즉, 과학과 의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아니며, 불교과 힌두교 등에서 내려온 종교 철학적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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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란도의 상인들이 코리아를 탄생시켰나요?
코리아(KOREA)는 국가명이 유래는 '고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는 고려시대 활동하던 벽란도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아랍계 상인들이 고려를 '쿠리야'처음 발음하면서 전달된 것입니다. 따라서 코리아는 이름을 만든 것은 고려와 무역하던 외국 상인들과 이를 받아 적은 서양 사람들의 기록에서 비롯된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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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본의 히키마유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히키마유는 고대 일본의 헤이안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1000년 넘게 이어진 독특한 눈썹 화장법입니다. 얼굴을 흰분으로 바른 뒤 눈썹을 밀거나 뽑은 뒤 검은 먹으로 새 눈썹을 짧고 둥글게 그려넣는 화장법입니다. 헤이안 시대부터 이상적인 미녀상은 하얀 얼굴, 검은 치아, 그리고 좁은 둥근 눈썹을 가진 모습인데, 히키마유는 완성된 미인상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즉, 하얀 얼굴, 검은 치아에 둥근 이마 위의 눈썹을 이상적인 미인상으로 보기 때문에 히키마유는 남여 귀족 모두 행하던 화장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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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람들을 보면 키 큰 사람이 굉장히 많잖아요?
유럽인 평균 키가 큰 것은 유전적 특징과 영향 및 생활 환경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북유럽의 게르만, 노르만 계통의 혈통을 가진 유럽인들은 유전적으로 키가 큽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남성의 평균키가 183cm로 이는 한국인의 평균키 175cm 보다 큰 키입니다. 또한 산업, 의료 기술의 발달과 영양이 풍부한 식단이 유럽인의 키를 더욱 크게 만든 것으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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