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왕과 사는 남자 영화를 보고 영월에 가면 역사 여행이 될까요?
영화를 활용한 역사 학습 기행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를 시청하고 자녀와 영월 청령포를 방문하면 조선 초기 중앙 집권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월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로 슬픈 조선 초기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계유정난 등 세조의 권력 장악 과정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청령포 전나루, 영월 단종비, 엄흥도 충의비 등 기행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근처에 한반도 모양의 지형(감입곡류 하천)도 있으니 지리 여행도 함께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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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호등의 색은 전세계가 동일한건가요??
신호등은 19세기 영국의 철도 신호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철도에서 빨강은 위험과 정지, 초록은 안정과 진행을 의미하였습니다. 여기서 빨강은 혈액, 불과 관련되고, 초록은 자연을 연상하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철도 신호가 1868년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앞 가스 신호등으로 사용되고, 1920년 미국 윌리엄 포츠가 노랑을 추가하여 3색 신호등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1968년 비엔나 협약에 의해 국제 표춘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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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성씨 역사에 대해 궁금해요.
우리나라 희귀성에 해당하는 선우, 독고와 같은 일본에서 온 성씨는 아닙니다. 선우는 고조선 기자의 후손을 자처하는 기중이 우산국에 봉해지며 조선의 '선'과 우산국의 '우'를 합쳐 만들어진 성씨입니다. 선우씨는 현재 1만명 정도됩니다. 그리고 독고씨는 선비족 독고부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수나라 황후 독고가가 유명압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신라말에서 고려초 귀화했다고 봅니다. 즉, 선우와 독고씨는 일본 성씨와 관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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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어트케해서 만들어먹게댄겐지궁금해여?
인류가 술을 만들게 된 것은 우연한 과정입니다. 원숭이, 곰 등의 동물들이 모아놓은 과일, 꿀이 빗물에 섞여 발효된 것을 먹고 취한 모습을 보고 인간들이 먹고 따라한 것이 유래입니다. 즉 자연 발효된 것을 인간이 먹으면서 술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기원전 7000년경 중국 자후유적에 쌀, 꿀, 과일 발효 자연물이 발견되어 당시 인위적으로 만든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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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당시 세운 갈사국이란 소국은 누가 세웠고 어떻게 멸망을 했나요?
'갈사국'은 삼국시대 초기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소국입니다. 기원전 1세기 대무신왕 당시 압록곡으로 피힌한 부여 금와왕의 막내아들, 대소왕의 동생인 갈사왕이 건국하였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압록강 북쪽, 또는 두만강 하류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기원전 1세기 태조왕 때 고구려의 압박 속에 갈사국왕 도두가 항복하여 46년만에 고구려에 흡수되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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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잘 나가던 기철 일가가 왜 몰락했고 조선시대에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는지요?
고려시대 원간섭기에 기씨 가문은 권문세족으로 득세했습니다. 기철은 무신 기자오의 아들로 누이가 원나라 황후가 되어 권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으로 기씨 일가는 몰락했습니다.하지만 공민왕의 시해되고 일부 남아 있던 혈족은 원나라에 살아남았거나 먼 친적을 생존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조선 건국 이후 지방에서 기반을 유지했습니다. 이들이 조선 초기 기씨 후손들이 음서나 과거를 통해 재등용되어 가문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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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왜국은 서로 동맹인 적이 없었나요?
우리나라 고대사에 고구려와 왜가 동맹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4세기 왜가 신라를 공격하여 위기에 몰리자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였으며,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400년 5만명의 기병을 이끌고 왜구를 격퇴하고 가야 지역까지 추격했습니다. 지리적으로 고구려는 왜와 멀고, 바다로 가로막혀 있어 동맹의 필요성이 약했습니다. 오히려 왜는 고구려와 갈등하였던 백제와 동맹 관계를 맺고 고구려를 견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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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성씨 공파는 왜 나뉘어진 것인가요?
성씨에서 '파'는 한 가문이 번성해 자손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지역별, 인물별로 분파가 생긴 것입니다. 특히 특출난 조상을 강조하기 위해 'oo공파'로 구분하여 가문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여기 '공'은 왕실로부터 시호를 받은 조상으로 고위 판서와 같은 벼슬을 지낸 분을 말합니다. '군'은 왕족을 말합니다. 즉, 분파는 혈통 추적과 가문의 자부심을 위해 분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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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하고 싱가포르에 대해서 궁금해서 하는 질문입니다.
일본에서 자민당, 싱가포르에서 국민행동당(PAP)는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습니다. 우선 일본은 1950~80년대 고도 성장을 주도했던 정당으로 경제 성장의 이미지와 연관되기 때문에 지지기반이 견고합니다. 그리고 중소선구제 구조에서 자민당에 표가 집중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분열과 무능 이미지로 인식이 강합니다. 또한 낮은 투표율이 자민당의 연속 집권에 유리하게 작동한 것입니다.싱가포르의 PAP 장기집권도 유사합니다. 리콴유 시기부터 경제적 성과가 지지의 기반이 되었으며, 부패에 엄격하고 성과 중심의 인사로 유능한 정부 이미지가 강합니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로 정권 교체가 가져올 민족 갈등에 대한 우려로 PAP의 장기 집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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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각 지역에서 유배지로 선정될 수 있게 간청하는 경우도 있었나요?
조선시대 법전의 '배소상정법'에 따라 죄인은 거주지와 거리 기준으로 유배지를 고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거주지와 멀리 보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죄수가 유배온 다는 것은 지역민에 부담이었습니다. 즉 유배인을 감독, 숙식을 맡아 제공하는 등 지역민에게 민폐였습니다. 따라서 지역민이 유배인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요청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처럼 지방 유지가 자신의 고을에 유배지로 정해달라는 것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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