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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코로나이전에는 양적완화를 지속적으로해도 물가가 오르지않았는데 그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 모든 경제효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습니다.시간이 상당기간 걸립니다. 이번 긴축도 상당기간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부동산 완화책도지금 당장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효과를 볼 것입니다.
경제 /
경제동향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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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증가속도 감소가 주택경기 바닥의 신호일까요?
안녕하세요. 축복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전세가률이라고 있습니다. (전세가 / 매매가) *100사람들이 전세가가 떨어지면 어쩔수 없이 보유한 집을 시장에 싼 가격에 던지게 됩니다.하지만 전세가률이 바쳐주면 크게 팔일이 없어지죠. 그래서 전세가률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전세가률과 매매가의 간극이 좁혀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 순간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닥은 아무도 모르지요. 하지만 어느정도의 기준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부동산 투자는 많은 돈이 들어 가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하세요. 성투하세요.
경제 /
주식·가상화폐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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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잖아요..그걸 한통 찰라면 1년이 넘게 걸리거든요
안녕하세요. 축복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 당연히 저금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지요. 저금통에 두면 이자가 전혀 안붙고 시간에 따라 화폐가격이 떨어지지만 은행에서는하루에 다만 10원이라도 이자가 붙습니다. 그게 한달 두달이 지나면 차이가 커지는 것입니다. 돈을 굴려야 한다는 말이 이런 것입니다. 돈은 가만히 두면 안되고 계속 움직여야돈을 버는 것입니다.
경제 /
예금·적금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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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전환사채(코코본드)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채권이지만, 은행의 자본건전성이 악화되어 기본자본비율이 일정 기준 이하로 내려가는 특정 상황이 되면 주식으로 자동 전환되는 채권을 말합니다. 정식 명칭은 우발전환사채(contingent convertible bonds)지만, 흔히 코코(CoCo)라 불립니다.코코는 평소에는 채권으로 분류돼 기본자본(core capital)에 포함되지 않지만, 유사시 주식으로 전환되면 부채가 자본으로 전환되면서 기본자본을 증가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은행의 BIS 비율이 올라가고 재무구조를 개선시키는 역할을 하여 위기 상황에서 일종의 완충역할을 하게 됩니다.코코는 유럽 각국 정부가 금융사의 BIS 비율을 강제적으로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한편, 코코는 안전자산인 채권이 위험자산인 주식으로 전환되므로, 그 위험이 이자율에 반영돼 보통의 채권보다 이자율이 높습니다.
경제 /
대출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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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인생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부실해서 오늘날 현존하는 자료는 많지 않으며 김정호의 태생은 좋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잔반이나 중인 출신으로 추정됩니다. 김정호는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미루어보아 실학을 접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야사에 따르면 김정호가 어릴 적 산세를 살펴보려고 산을 헤매다가 선인을 만났는데 선인이 대뜸 "산에 함부로 들어와 뭐하는 거냐"하고 호통을 치자 처음에는 겁을 먹었다가 슬그머니 심통이 나서 "대장부가 하려는 일을 어찌 경솔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들었다. 그러자 선인이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김정호에게 '산의 뿌리를 찾는 자'라는 뜻으로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는데 '고산자'였다고 합니다.자신이 이전에 편찬한 지도인 청구도와 동여도, 이전의 각종 지도와 지리지를 참고해서 대동여지도를 편찬했습니다. 보통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정호 자신이 전 국토를 유람하며 대동여지도를 제작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짜로 김정호가 그러한 방법으로 지도를 제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김정호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들은 모두 김정호가 실측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3가지인데 청구도에 대한 서문인 최한기의 '청구도 제'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찾고 수집, 열람하였다", 신헌의 '대동방여도 서'에는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증거로 삼고 여러 지도를 서로 대조하며 여러 지리지 등을 참고"하였고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는 "깊이 고찰하고 널리 수집"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디에도 직접 답사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당연히 몇몇 부족한 곳은 직접 답사를 했겠으나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못했던 김정호가 전 국토를 답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10리마다 표시를 해 두어서 실용적인 목적을 꾀하였고 여러 지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삽입하는 등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조선 시대 당시의 생활상을 꼼꼼하게 알 수 있는 훌륭한 정보지이기도 합니다. 10리는 직선 거리 10리가 아니라 실제 거리 10리이고 산이 험할수록 촘촘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김정호는 "대동지지"라는 지리지도 서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학문 /
역사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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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지교의 정확한 의미와 그 유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금난지교의 고사성어의 뜻은 아래와 같습니다.「단단하기가 황금(黃金)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蘭草) 향기(香氣)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마음이 맞고 교분(交分)이 두터워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 나갈 만큼 우정(友情)이 깊은 사귐을 이르는 말.공자님의 말씀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의 도(道)는 나가 벼슬하고, 물러나 집에 있으며, 침묵(沈默)을 지키지만 크게 말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하나로 하여 말하면 그 향기(香氣)가 난초(蘭草)와 같다.(同人 先號 而後笑 子曰 君子之道 惑出惑處 惑默惑 語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학문 /
역사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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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와 신석기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뗀석기를 사용하였고 사냥 및 채집을 실시하였습니다. 신석기가 되면서사람들이 점차 정착하고 간단한 작물을 재배 합니다. 이때는 간석기를 사용하여 사냥도 합니다. 청동기에는 군장이 생기고 계급이 분화되고 곡물이 저장되어 부족간의 전쟁도 일어나게 되고 고대국가가 성립되기도 합니다.
학문 /
역사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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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자집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최부자의 1대는 최진립입니다. 2대 최동량은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큰 땅을 구입합니다. 산부터 강까지 이르는 큰 땅을 산 후, 여기 전체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최국선은 둑을 세우고 옆에서 도우며 동반자가 되어 주었습니다.최동량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땅을 쓰고 싶은 듯 하면, 소작료를 수확한 곡식의 반만 받고 중간 관리자인 마름도 두지 않았습니다. 마름은 중간에서 소작료가 일꾼과 땅주인에게 잘 교류되는 지 검사관 역할을 맡았으나, 중간에서 소작료를 빼돌렸기 때문에 마름이 없는 것이 안전했습니다.이런 방식으로 최동량은 일꾼을 모아 그 큰 땅을 모두 일구었습니다. 농사는 성공적이었고, 거름을 쓰는 시비법과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량을 크게 늘렸습니다.한편 그 얼마후 최동량은 세상을 떠나고 최국선에게 최부잣집의 3대째 자리를 내어 줍니다.그리고 그 뒤를 이은 최국선은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쌀을 빌려간 것을 못 갚자 아들 앞에서 담보문서를 모두 없애고 죽을 쑤어 거지들에게 푸짐하게 나눠줍니다. 배고픈 보릿고개 때에는 100석의 쌀을 베풀었습니다.. ‘사방 백 리에 굶어 죽는 자가 없도록 하라’는 최부잣집의 선행 덕분이었을까. 활빈당의 불길 속에서도 최부잣집은 살아남습니다. 하지만 12대 최준에 이르러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는 신념으로 독립자금 마련에 재산을 내놓습니다. 광복 후에는 교육 사업에 전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최부자가 12대, 300여 년으로 막을 내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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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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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대급 왕인 정조의 가장 큰 업적들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탕평책 실시 - 시파, 벽파를 가리지 않고 고루 등용규장각 설치 - 역대 왕들의 글, 글씨 등과 어진을 보관하던 왕실 도서관을 설치실학을 중시 - 다산 정약용을 비롯, 여러 실학자들의 정계 진출을 지원, 중농학파 실학자들을 육성.장용영 설치 - 왕권강화를 위한 왕실의 친위대 군대조직을 설치서적 편찬 - <대전통편>, <동문휘고> , <탁지지> , <추관지> . <규장전운> 등을 편찬.수원화성의 축조 - 정약용이 서양의 기구를 본떠 개발한 거중기를 활용하여 축조.신해통공 - 금난전권을 전면 폐지하여 상업의 자유화를 촉성. 경제의 발전을 유도.초계문신제 실시 - 초계를 통해 등용시킨 당하관 등의 관리자를 위한 교육제도를 실시.서얼의 등용 - 신분상제약으로 정계진출에 제한이 있었던 서얼들에게 길을 염.공장안 폐지 - 지방의 관아에 속해 있는 공장들의 등록 장부를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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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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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기차 역사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에서 첫 전기 자동차를 내놓은 회사는 현대자동차입니다.현대자동차는 처음으로 전기 자동차를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해냈습니다. 당시 쏘나타 전기 자동차가 세상에 나왔는데, 최고 속도는 겨우 시속 60㎞밖에 되지 않아 고속도로를 달리기에는 느렸습니다. 달릴 수 있는 거리도 70㎞뿐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인천이나 경기도까지 겨우 달릴까 말까 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 충전으로 500㎞를 거뜬히 달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정도가 됐습니다. 테슬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한 전기 자동차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성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출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시다시피 EV6, 아이오닉6 등에도 전기충전기가 탑재되어 판매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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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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