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그릇에 술을 붓는 의식을 지금은 무엇으로 대신하는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는 간단 한것을 좋아하기 떄문에 일반 가정 집에서는 이렇게 보통 안하지만 지금도 전주나 안동 기타 제례 의식을 중요시 여기는 고장의 조상 예배에 가면 술을 따라 향불 위에서 세 번 돌린 다음, 모사(茅沙)1) 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고 일어나 두 번 절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에 계신 신에게 알리기 위함이고, 모사에 술을 따르는 것은 땅 아래 신에게 알리기 위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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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은 왜 패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공 내전에서 장개석의 국민당이 모택동의 공산당에게 진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부정 부패 입니다. 중국 국민당은 당시 미국으로부터 약 20억 달라의 지원금을 받으며 전쟁을 치릅니다. 그런데 그 중 절반 이상이 부정 부패한 관리들로 부터 착복 당하거나 혹은 공산당 진영으로 흘러 들어 갑니다. 결국 이러한 내부적인 부패가 만연 해져서 국민당은 중국 본토를 내주고 대만으로 쫗겨 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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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모르고 이런 음악을 접한 사람들은 단지 듣기 편한 연주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뉴에이지로 분류되지 않던 세미 클래식이나 피아노 연주곡까지 전부 뉴에이지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부 음악가들은 뉴에이지의 강한 종교적인 의미 때문에 자신의 음악을 뉴에이지라고 불리는 것을 꺼려한다고 하네요. 대표적으로 이루마, 조신 윈스턴, 야니, 반젤리스 등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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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이라는 풍습이 있을 때 같이 묻히기 싫어하던 사람은 그냥 생매장을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장을 당하는 사람들의 신분은 주인의 시중을 들던 여성[婢妾], 시종, 시녀, 시동 등 가내 노동자와 무사, 마부, 창고지기 등으로 무덤 주인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물들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고대 사회에서 주인의 명령을 거역 하기 어려운 신분 이였고 혹시 라도 싫다고 하면 대신 다른 가족이나 친지가 순장을 당하기에 거부하기도 쉽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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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노비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 왜란 이후 국각 경제가 거의 파탄에 이르고 먹고 살 길이 막막 해진 평민 농부) 들도 선적이 되거나 도망 노비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민의 신분에서 노비의 신분으로 추락 하는 경우가 많았고 양반들의 입장에서는 노비가 늘어나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더 좋은 결과 였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노비의 증가가 국가와 왕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좋을 이유가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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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노비들이 왜군이 되어 싸웠다는말이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능한 일이 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상황을 보면 원래 조선을 인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수급을 많이 베는 노비는 면천을 시켜 준다고 발표를 해서 노비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가 발생 하자 선조와 다른 양반 세력들은 말을 바꾸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충원 이라는 노비인데 신충원은 충주 출신의 지극한 천인 출신으로, 수문장의 자리에 오른 만큼 적의 수급을 적어도 4급 이상 베었다고 합니다. 신충원은 신립의 군대가 패한 뒤 민병과 승군을 모집해 조령과 단월(丹月) 사이에 매복해 적을 많이 죽였고, 그 후 왜군을 여러 차례 습격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나 결국 양반들로부터 시기와 질시를 받아 결국 양반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자들이 비단 신충원 뿐 아니라 전국에 수십 수백 명이 있엇을 것이고 이런 자들은 결국 마음에 앙심을 품고 일본편에서 싸웠을 가능 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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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제삿날은 종교에 상관없이 돌아가신 당일에 지내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날을 생일 이라고 하듯이 죽은 날을 기일 , 혹은 제삿날 이라고 부리지요. 이것은 동서 고금을 막론 하고 혹은 종교를 막론 하고 동일 합니다. 불교에서나 유교 에서는 제사를 지낸 다고 하지만 기독교나 천주교에서는 소천하셨다 혹은 기일 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장례 미사나 장례 예배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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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처는 진짜 악처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가 악처로 유명한 것도 원인은 잠자리 불만이었다고 전해 집니다. 동성애자였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소크라테스는 아내에게 무심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독수공방을 견디다 못한 크산티페가 “왜 부부관계를 멀리 하냐”고 묻자 소크라테스가 “당신은 아이들의 어머니요, 신성한 모성(母性)이란 말이요. 그 신성한 모성을 어찌 장난감인양 희롱한단 말이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당신을 모성으로서 존경하겠소”라고 대꾸했다고 하지요. 물론 소크라테스가 성욕이 없거나 동성애자 이진 않았겠지만 너무 와이프를 멀리 하다 보면 이렇게 오해를 불러 일으 킬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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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비의 합궁이 가능한 날이 제한적이었던 건 누구를 위함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합궁 절차에 큰 차이는 없는데, 왕비의 경우에는 큰방상궁(제조상궁)이 일진(日辰, 운세 등)을 살펴보고 길일을 택해서 합궁일을 정했습니다. 다만, 후궁이나 궁녀의 경우에는 합궁일을 어떻게 정했는지 기록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까다롭게 택일을 한 것은 풍수 지리나 미신 적인 요소도 있을 수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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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는 일제강점기 때 국화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궁화에 대한 우리 민족의 한결 같은 사랑은 일제강점기에 시련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는 무궁화를 ‘눈에 피꽃’이라 하여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선다거나, ‘부스럼꽃’이라 하여 손에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생긴다고 하는 등 무궁화를 탄압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호익(禹浩翊), 남궁억(南宮檍) 등이 무궁화의 가치인식 및 무궁화 보급운동 등에 헌신하였으며, 동아일보에서는 1923년부터 10년 간 매년 무궁화 사진을 게재하는 등 우리 민족은 무궁화 보존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하지요. 오래 전부터 조선 시대 장원급제자 머리에 꽂은 꽃도 무궁화였고, 혼례 때 입는 활옷에 무궁화 수를 놓아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1945년 광복 이후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면서 국기봉을 무궁화로 사용하고, 정부와 국회의 표장도 무궁화 도안을 사용하면서 나라꽃(國花) 무궁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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