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투우문화는 어떻게 해서 시작된건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투우의 기원은 다양한 버전들로 전해져 내려온다. 먼저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와 알바라신 산맥 등지의 동굴벽화에 야생 들소가 묘사된 것을 두고, 석기시대 사람들이 날렵함과 정교함등 '기술'을 활용하여 황소를 포획하는데서 투우가 기원했다는 썰이 있다. 다른 버전의 기원은 고대 이베로족의 종교의식으로 전해지는데, 이베로족은 종교의식에 참여한 관중들 앞에서 황소와 대결하고 이를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영상 속 투우 경기의 형태, 그러니까 투우가 '쇼비즈니스화'하기 시작한 때는 원형경기장이 만들어진 로마시대부터이다. 용맹한 이베리아 황소들이 많이 서식한 스페인에서 유독 활성화 됐던 것 같다.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의 대부분을 장악하던 국토수복전쟁때에는 이슬람이 지배하던 지역인 알-안달루스에서는 투우가 성행하지 않았지만, 가톨릭 왕국이 지배하던 곳에서는 성행했다고 한다. 스페인 중세시대에 투우는 귀족의 스포츠였다. 귀족들은 자신의 용맹함을 뽐내기 위해 긴 창을 들고 황소와 겨뤘다고 한다.투우가 민중의 관심사로 등극하게 된 것은 18세기부터다. 위에서 본 그림 속 엘시드는 소와 겨룰 때 '말'을 타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투우사들은 땅에서 직접 소와 대립했고, 이때부터 경기 룰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안달루시아 론다 출신의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오늘날 투우 경기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마타도르(Matador)r가 사용하는 붉은 천(Muleta)을 들고 소와 정면대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투우 경기 형태와 유사하다고 한다. 투우 경기에는 총 6명의 투우사들이 등장하는데,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마타도르(죽이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스페인어)가 물레타를 들고 소와 대결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라고 한다.유난히 뛰어난 경기력을 보이는 소에게 관중들은 'Libre!'을 외친다. 자유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로, 소를 풀어줘라라는 뜻인다. 이때 경기 위원장은 오렌지 빛 손수건을 내거는데 이는 '소의 사면'을 뜻한다.
Q. '정여립의 난'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천하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으며, 누구라도 임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던 혁신사상가 정여립이 반역자의 누명을 쓰고 처형됐다. 이 사건의 처리를 맡은 정철은 서인에 속한 사람으로, 정여립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이발, 이호 등 동인을 대거 처형했다. 이를 '기축옥사'라고 하며 이를 통해 정철과 서인이 붕당 정치의 첫 번째 승자로 떠올랐다.정여립이 대동계(大同契)를 이끌고 반란을 꾀한다는 역모고변으로 옥사(獄事)가 시작되었다.[7] 정여립의 자결로 역모는 사실로 굳어졌고,[7] 동인을 숙청하고 정권을 재탈환할 절호의 기회로 판단한 서인들은 사건을 확대시켜 3년간이나 옥사(獄事)를 이어가며 1,000여명의 동인들을 유배나 사형에 처했다
Q. 관념론 철학이 독일에서 발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칸트를 시작으로 피히테, 셸링을 거쳐 헤겔에 이르러 완성된 독일 고전 철학을 인식론적, 존재론적 측면에서 이르는 말. 인간의 의식을 유일한 실체로 보고 인식도 의식의 능동적인 작용의 결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독일에서 발전한 이유는19세기초~20세기 통일국가의 면모는 있지만 당시 프링스나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낙후되어있고, 프랑스혁명,나폴레옹의 침략등으로 혼란할때 그들의 사상(의지,직관)을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