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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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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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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에는 쌀을 다음 연도까지 어떻게 보관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창은 곡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강이나 하천 인근에 설치한 창고를 의미합니다. 곡물은 무게가 많이 나가고, 부피가 크기 때문에 다량의 곡물은 보통 선박을 통해 운송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 왕조는 수로 교통의 중심지에 강창을 설치하고, 곡물을 보관하고 유통했습니다.가정에서는 뒤주라는 가구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뒤주는 곡식을 담아 보관하는 가구입니다. 가정에서 쌀·보리·콩·깨 등의 곡식을 넣어두는 궤로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튼튼하고 견고하게 제작되었고 쥐나 해충, 습기의 피해를 막기 위해 다리를 높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쌀뒤주는 크고, 팥뒤주는 작았ㄷ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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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제 당시에 정말 산에 말뚝을 박았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공식적으로 조선총독부 혹은 조선주둔 일본육군이 조선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하여 쇠말뚝을 박은 일이 없으니 당연히 기록이 없습니다.일제 쇠말뚝설 일본 패망 후 전범재판에서 일본 육군대장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영어 통역관이 '신세우'라는 한국인이었는데 야마시타가 조선에서 근무할 당시 조선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 수백 개를 박았다는 비밀을 형 집행 직전 신세우에게 털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의 토지조사사업에서 사용된 삼각점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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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본이 한국 산들에 말뚝을 박아 넣은게 거짓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공식적으로 조선총독부 혹은 조선주둔 일본육군이 조선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하여 쇠말뚝을 박은 일이 없으니 당연히 기록이 없습니다. 일제 쇠말뚝설은 이른바 일본 육군 장군 야마시타 도모유키 전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일본 패망 후 전범재판에서 일본 육군대장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영어 통역관이 '신세우'라는 한국인이었는데 야마시타가 조선에서 근무할 당시 조선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 수백 개를 박았다는 비밀을 형 집행 직전 신세우에게 털어놓았다는 것입니다. 풍수지리적으로는 쇠말뚝이 박힌 위치가 대한민국 기가 뭉친 혈처가 아닌 엉뚱한 바위이므로 일제강점기의 토지조사사업에서 사용된 삼각점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당시 상당한 반일 감정과 풍수지리가 실존하던 시기에 이를 보고 분개한 농민들에 의해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끊으려 한다'고 구전되었을 수 있다는 소견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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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강원도 영원군 단종유배지가 있던데 단종유배는어떤사건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원도 영월에는 단종대왕유배길이 있었다고 합니다. 1455년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양위한 후, 1457년 6월 박팽년,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김질의 밀고로 실패하였습니다. 세조의 측근인 정인지, 신숙주 등이 단종도 복위 모의에 참여하였다 하여, 단종은 1457년(세조 3)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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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강대국이었던 소련은 왜 해체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제적인 혼란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소련은 다른 서구 국가들의 시장 경제 체졔와 다른 중앙 계획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련의 붕괴 직전에는 기본 생필품이 부족했고 상점에는 이를 구하려는 인파가 연이어 줄을 섰다고 합니다. 또한 이데올로기, 민족주의, 상실감과 박탈감, 고르바초프의 러더십이 소련의 붕괴 원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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