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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현행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전문가입니다.

이현행 전문가
운흥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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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경복궁은 중건하는데 왜 그리 오래 걸렸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임진왜란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방치된 농경지가 많아져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어 이에 따른 조세수입이 급감했습니다. 또한 정유재란이 벌어졌으며 17세기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이에 따른 정부재정에 큰 압박이 되어 이를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또한 그 전 이궁으로 쓰던 궁을 정궁으로 쓰면서 막대한 재정과 노동력이 들어가는 경복궁 중건에 쉽사리 착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19세기 세도정치기에는 왕실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세도가문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인데 왕실을 위해 궁을 재건할 리가 없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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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 후기에 왜 양반계급 비율이 증가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분제의 해이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으로 납속책이나 공명첩이 발행 혹은 시행되었는데, 납속이란 일정 곡식을 납부하면 천민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는 임란 때 재정난으로 재정확보의 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또 군공을 세우거나 일정 곡식을 납부하면 공명첩을 내주기도 하였습니다. 공명첩은 이름을 비어둔 관직임명장입니다. 이런 양난으로 많은 수가 발행되어 신분상승을 이룬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로인해 천민은 줄어들고 양반수는 급격히 늘어났습니다.조선 후기에는 이앙법이나 광작, 상품작물의 재배 등으로 부농층이 성장하는 때입니다. 이런 부농들은 족보를 사들이거나 위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양반이 되었습니다. 반면 일부 양반들은 무늬만 양반이지 과거에 몇대째 들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몰락양반도 나타났습니다.조선 말이되면 양반수는 그리하여 대다수가 되고 세와 역을 부담하는 상민층은 줄어들고 천민수도 급감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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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옛말에 배산임수라는 말이 있던데 무슨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풍수지리는 신라말에 도선이란 사람에 의해 도입된 사상입니다. 도교 계통이기도 했습니다. 풍수지리는 길지와 흉지를 구별해 길흉화복을 점치고 불러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예를들어 고려말 남경 즉 한양길지설이 있었습니다. 한양이 새도읍으로 명당이며 수도를 옮기면 땅의 좋은 기운으로 나라가 흥한다는 것입니다. 고려 때 묘청의 난은 개경이 쇠하고 서경이 뜬다는 주장을 했지요.조선에서는 유교 이외에 대한 사상은 탄압했지만 풍수지리 만큼은 여전히 유행했습니다. 주로 묘를 길지에 조성해야 후손들이 흥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좋은 명당은 배산임수가 손꼽혔는데, 배산임수는 산이 뒤쪽에 있으며 앞쪽으로는 물이 흐르는 지형을 말합니다. 주로 이런 곳이 명당이고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형의 산에 묘를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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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명나라 망명은 왜성사되지 못했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선조는 전쟁을 맞아 무능한 군주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 간 것도 모자라 명으로 망명하려 하였으니 백성을 버린 용기없누 군주란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오히려 분조하여 광해군이 민심을 수습한 공로는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조는 이순신의 연전연승과 그로인한 백성들의 환호도 시기질투하였습니다.명이 받아주질 않을 가능성, 명군의 원조계획 실행, 이순신이 활약과 각지 의병들의 활약으로 망명의지가 약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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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이 전투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규전으로 들판에서 맞붙었다면 의병들이 필패했겠지요. 의병들은 그 지역을 잘아는 사람들이라 지리적 판단과 게릴라전법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왜군들은 그 지역의 지형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기습에 허를 찔린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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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중세 카톨릭과 근대의 카톨릭의 입장 변화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세 카톨릭은 지배문화이자 지배사상이고 정치 경제적 대지분을 지닌 최상위의 위력을 가졌습니다. 당시 카톨릭의 부패에 대항해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종교전쟁까지 벌인 결과 신교가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카톨릭은 그 위세를 상실했으며 이를 비서양지역으로의 포교활동으로 만회하고자 하였습니다. 카톨릭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로 포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으며 각지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포용성도 보였습니다. 카톨릭의 포교대상은 주로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사회적 강자와 지배층에게 카톨릭은 새롭지만 위험한 종교였지요. 그래서 주로 하층민, 여성, 소외된 세력들이 주요한 포교대상이었고 이들이 주로 천주교신자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신 앞의 평등을 강조하며 이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습니다.중세 카톨릭과는 결이 조금 다르지요. 지배하는 종교에서 벗어나 근대 가톨릭은 그래서 좀더 서민과 약자를 위한 포용적인 종교 모습이 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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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경험주의 철학과 공리주의 철학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험주의 철학과 공리주의 철학은 일견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른 철학입니다. 대륙합리론이 발달했을 때 영국에서는 경험주의 철학이 등장했습니다. 대륙합리론의 대표적인 인물이 데카르트입니다. 이성을 강조해 진리에 이르는 이성의 힘에 주목했고 방법적 회의론으로 유명하지요.이때 영국에서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경험론을 들고 나옵니다. 백지 상태에서는 이성이 아니라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합리론과 경험론은 모두 진리에 이르는 길에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가를 탐구한 것이죠.공리주의 철학은 훨씬 후에 등장한 것입니다. 공리주의 철학은 공리를 강조하는 철학입니다.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대표적인 문구이지요. 이것은 진리탐구가 아니라 사회적인 철학에 가까워 사회의 이익을 어떻게 추구하고 최대화할 것인가의 철학인데 실용주의적 철학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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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광해군이 실시한 중립외교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광해군 대 시행한 중립외교는 오늘날에 높이 평가되는 국익을 우선시 한 실리외교에 가깝습니다. 임진왜란으로명은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 국력이 약해지고 만주에서 성장하는 이민족인 여진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누르하치가 건국한 후금은 이 틈을 타 강성해지는데 임진왜란 때 원군파병을 제안할 정도였습니다.임진왜란 후 후금은 더욱 강성해져 명을 공격하기에 이르고 이에 명이 파병을 요청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정세를 보면 명이 지는 해 후금이 뜨는 해였던 것인데 광해군은 명에 원군을 보내는 명분을 쌓고 후금에는 어찌할 수 없이 명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밀지를 보내 일찍 후금에 투항해 우리 군사의 피해, 또 장차 후금의 조선침략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이러한 것이 조정에 알려지고 또 광해군을 지지한 집권붕당인 북인의 전횡 등이 겹쳐져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인목대비를 폐하고 적자인 영창대군을 죽인 것도 반정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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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남자어린이들이 축구같은 스포츠를많이 좋아하는것은 왜 그럴까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죽구는 굉장히 인기가 많은 스포츠입니다. 어른이나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특히 남성에게 인기가 많지오.공 한개만 있으면 어디서나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축구지요. 공을 가지고 뛰어다니고 공을 차고 골을넣고 상대를 패배시키는 등의 이 모든 특징이 사실 전쟁과 같지요. 전쟁을 규칙화 온순화한 것이 축구라는 스포츠라는 것이지요.전쟁놀이와 축구 모두 남성 어른이든 어린이든 좋아하는 대표적인 것이지요. 남성성을 맘껏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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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조는 왜 정순왕후를 그냥 두었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순왕후는 영조가 아주 나이든 때에 들인 왕비입니다. 아주 어린나이였죠. 정순왕후는 노론 진영의 인물입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노론이 있었지요.따라서 정조가 노론 인물을 제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영조가 다져놓은 탕평을 계승하려 했지요. 정조는 당파색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입장차이에 따라 붕당을 결성하고 그에 따른 붕당정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지요. 준론이니 완론이니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따라서 어느 한 당파를 제거하면 다른 당파가 득세하고 그 당파가 다른 당파의 씨를 제거하려는 일당독재의 폐단을 공존과 타협으로 바꾸고자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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