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성계는 친명파였다고 하는데 창왕을 폐위시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위화도회군 이후 우왕은 궁에서 강화도로 쫓겨났고, 아들 창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창은 이성계 일파의 후보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조민수와 이색의 합작이었죠.아무튼 그런 가운데 우왕이 사람을 시켜 이성계를 암살하려다 실패합니다. 이성계 일파는 우왕을 가만히 두어선 안 된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해서 폐위를 위해 만들어 낸 논리가 "폐가입진"입니다.즉, 지금 우왕과 창왕은 신돈의 핏줄로 가짜 왕씨이니 폐하고, 진짜 왕씨를 왕으로 세워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 실제론 우왕과 우왕의 자식인 창왕이 아비의 복수를 할까 우려하여 가짜 논리를 내세워 폐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선덕여왕 시절 비담에 관한 이야기는 드라마와 같은가요?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내용은 각색입니다.비담은 미실의 아들도 아니고, 선덕여왕을 사랑했다는 기록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여왕의 통치에 불만을 느끼고 반란을 일으켰다고만 나오죠.실제 비담은 김씨 진골귀족으로 보이며, 선덕여왕을 이어 왕위에 오를 수 있던 상대등이었습니다.비담은 "여주불능선리", 즉 여자 임금은 좋은 통치를 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 반란은 김유신과 김춘추가 진압하였죠.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춘추가 여왕이 사망할 시점에 군사를 일으켜 상대등 비담 세력을 제거한 것이 아닌가 보기도 합니다.
Q. 하륜이 경주로 발령받은 이유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여러 신료들의 일대기를 정리한 «국조인물고»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정축년(丁丑年, 1397년 태조 6년) 정월에 정도전이 군사를 출동시켜 국경을 나가려고 논의하면서, 공을 꺼려 계림 부윤(鷄林府尹)으로 내보냈다."하륜이 표전문 사건을 해결하긴 했으나 그 과정에서 핵심 인물인 정도전이 함께 명나라에 가서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럴 경우 정도전은 명에서 죽을 게 분명한 일이었죠.아무튼 이 일 때문에 하륜은 정도전에게 견제받았고, 그래서 계림부윤으로 좌천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