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도는 왜 불교의 근원지인데 힌두교가 왜 더 발달했나요?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도는 실제로 불교의 근원지입니다. 그러나 힌두교가 불교보다 더 발전한 이유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입니다.첫째로, 불교는 팔레스타인, 그리스, 인도 등으로 전파되었지만, 힌두교는 인도에서 태어나고 발전했습니다. 따라서 힌두교는 인도 문화와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만큼 더욱 널리 퍼지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둘째로, 힌두교는 인도의 사회 구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인도 사회는 종교적인 계층 구조가 있었는데, 이러한 계층 구조에 따라 힌두교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힌두교는 브라만 계층에서 발전하였는데, 이 계층은 신성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힌두교는 권력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세번째로, 불교가 인도에서의 세력이 약화되었다는 점이 있습니다. 불교는 고대 인도에서 유력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힌두교는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인도의 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마지막으로, 붓다 싯다르타가 왕자였는데, 그의 세력이 약하다는 주장은 없습니다. 붓다 싯다르타는 군주층 출신이었지만, 그가 불교를 창시하고 전파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인도에서 다양한 종교들과 경쟁하면서 세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힌두교가 더욱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Q. 창과방패라는 뜻의 모순의 고사는 정확히 어떤것인지요?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순(矛盾)은 중국의 철학자인 마오쩐동(毛澤東)이 주장하였으며, 그는 모순이란 상호 연결된 대립하는 두 가지 요소가 서로 간섭하고 충돌해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마오쩐동은 모순을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현상으로 바라보았으며, 모순의 발생은 변화와 개발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모순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인류의 발전과 진보에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마오쩐동의 모순 이론은 중국 고전인《논어》와 《대학》에서 언급되는 "유교적 모순" 개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유교적 모순은 서로 상호 대립하는 두 가지 요소가 서로 보완되어 하나의 완전한 것을 이루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마오쩐동은 이러한 유교적 모순 개념을 발전시켜서, 모순이 인간 사회의 발전과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습니다.
Q. 조선시대에도 젖소를 키워서 우유를 마셨었나요?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도 젓소를 키워서 우유를 마시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우유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부유층에서는 우유를 마시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으며, 특히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임금이나 권위자들이 우유를 마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우유를 마시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당시에는 젖소가 적었기 때문에, *소가 있는 가정들도 우유를 자주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우유가 귀하고 보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물이나 술, 차 등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농사일에는 젖소가 쓰이기도 했습니다. 젖소는 밭갈이나 농작물 수확 등에 이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젖소의 분비물인 건조한 분획물인 '말미잘'은 비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Q. 성리학은 유교와 어떤점이 차이가 나는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리학은 고려 말기에 우리나라에 보급된 유교적 학문으로, 중국의 성리학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성리학은 인간의 도덕적 규범과 사회적 행동 규범에 대한 학문으로, 그 근본적인 가르침은 인간이 어떻게 선량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성리학은 유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유교에서도 인간의 도덕적 규범과 사회적 행동 규범에 대한 가르침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와 관련된 역서와 함께 유교의 중요한 학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유교와 성리학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선한 행동이 곧바로 천도(天道)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강조됩니다. 이는 유교에서도 중요한 가르침이지만, 성리학에서는 이를 더욱 강조합니다.성리학이 보급되기 전에도 우리나라에는 다른 형태의 유교적 학문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에는 잠언(箴言)과 논어(論語) 등의 경전이 많이 읽혔으며, 이들 경전에서도 인간의 도덕적 규범과 사회적 행동 규범에 대한 가르침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성리학이 보급되면서, 이전의 유교적 학문들과 함께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유교적 학문이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Q. 아즈텍인은 어디서 왔고 아즈텍 문명은 어떻나요?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즈텍 문명은 기원전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중심부에 위치한 메소아메리카 지방에서 발전한 문명입니다. 아즈텍인은 중앙아메리카에 원래부터 살고 있던 인디오 부족들 중 하나로, 그들은 기원전 12세기쯤부터 멕시코 중부 지방에 들어와서 주민들과 함께 살며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아즈텍 문명은 농업과 건축, 과학, 철학, 예술 등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으며, 수많은 도시국가를 건설하여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전쟁과 인신공양 등의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았으며, 이는 이후 스페인의 침입과 함께 그들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인신공양 문화는 아즈텍 문명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는 스페인의 침입과 함께 대량虐殺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스페인의 침입과 함께 아즈텍 문명은 많은 인명과 문화적 유산을 잃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침입과 함께 그들의 수도인 텐토차틀란(Tenochtitlan)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아즈텍 문명은 종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