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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정현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전문가입니다.

한정현 전문가
부산예술고등학교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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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로아스터교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로아스터교는 페르시아 지역에서 발원한 이란 계통의 종교로 마즈다교(Mazdaism), 혹은 중국에서는 불을 숭상한다 해서 배화교라 불렸다. 이란 국민들에게는 페르시아를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종교로 여겨진다. 조로아스터교는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중심으로 선과 악의 질서 및 세계를 구분하는 게 특징이다.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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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르피즘이라는 회화 양식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오르피즘(Orphism)은 1912년 로베르 들로네를 주창자로 하여 발족한 큐비즘의 한 분파이다. 이 명칭은 그리스의 악신(樂神) 오르페우스에서 연유한 것인데, 시인 아폴리네르가 명명(命名)하였다. 전통파 퀴비슴이 엄격한 기하학적 구성에 따라 색채를 망각하고 색채를 선의 종속적인 요소로 떨어뜨리는 데에 반대하여 색채야말로 회화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이며 그 다이내믹한 힘을 화면구성의 기본으로 하려는 것이 이 파의 주장이다. 이로써 공간적 요소(형태)와 시간적 요소(리듬)의 동시성(同時性)을 가져 오게 하여 화면에 음악적인 해조(諧調)가 생기도록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점차로 구상적(具象的) 형태를 떠나 순수한 색채 형태만으로 콤퍼지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추상회화의 한 분야를 개척하였다. 이 파의 멤버로서 후에 들로네 부인이 된 소니아 테르크와 체코 사람인 프란시스크프카 및 미국인 모간 러셀 등이 있다.오르피즘의 대표작은 들로네의 1912년 작품 '연속적인 창문'이다. 그리고 1909년 단발 비행기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넜던 루이 블레리오를 기리기 위해 그린 1914년 작품 '블레리오에게 바치는 경의'라는 작품은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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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종대왕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농사직설: 조선 풍토에 맞는 농서 편찬 지시.•대마도 정벌: 이종무 장군에게 명해 왜구를 토벌.•4군 6진 개척: 최윤덕 장군(4군)과 김종서 장군(6진)에게 명해 두만강까지 영토를 확장.•집현전: 정책, 학문 연구 및 국왕자문기구 설립.•고려사 편찬.•훈민정음 반포: 수많은 업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업적.•정간보: 박연이 음악 정리, 새로운 악기 개발.•속육전, 등록 등의 법전 편찬 및 정리.•해시계 앙부일구, 물시계 자격루등 발명.(장영실과 함께)•유교 사상 발전.•전세 제도 확립.•총통, 신기전, 화차를 비롯한 각종 화약 무기 대대적 개발, 개량.•한성을 기준으로 한 역법인 칠정산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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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순신장군이 이길수 있었던 이유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순신은 전투에 임할 때마다 초탐선(哨探船)·사후선(伺候船)이라 불리는 수많은 정보 수집선을 활용하여 일본 수군의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 부심했다. 또 이순신 휘하 병사들의 상당수는 바닷가 주민들로서 전라도·경상도의 조류 간만(干滿)이나 암초의 소재 등 해로(海路) 사정에 밝은 사람들이었다. 이순신은 이런 부하들을 뛰어난 수군으로 편성·조련하는 데 역량을 발휘했다. 요컨대 자신을 잘 알고 적도 잘 알려고 노력했던 이순신의 자세야말로 해전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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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의 왕권이 사라지게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0년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韓日合拼條約)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의 제 1조와 2조에는 한국 황제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또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넘겨준다는 것과 일본 황제는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로서 519년간 유지되어 온 조선왕조는 종언을 고하고, 식민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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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중국의 고구려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이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뭐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의 경우는 한국사의 범위 안에 속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우리는 꾸준히 고구려를 한국사로 인식했지만, 중국은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찬한 적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옛 중국인들은 한반도와 만주에 사는 사람들을 동쪽에 사는 이민자들을 비하하는 멸칭, 즉 동이라고 불렀다. 또한 전통적인 중국의 한국인 비하 표현인 가오리방쯔를 생각해보자. 이미 한국을 고(구)려놈이라고 부르고 있는 데에서 한국이 고구려 후손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중국은 고구려를 전통적으로 중국사로 여기지 않았으나, 현대에 들어서서 자국사로 편찬하려는 이중적인 행동를 보여주고 있다.당시 고구려의 지리적 측면에서 봐도 고구려의 인구는 한반도 내 대동강 유역 평야 지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구려가 만주 지역을 꽤 많이 차지한 것, 그리고 오늘날의 한반도 쪽 영토보다 중국 쪽 영토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아진 것은 4세기 말까지 가서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한반도 쪽에 대부분의 영토를 두고 있었다. 건국 초기부터 함경도 쪽의 옥저, 강원도 쪽의 동예를 자국의 영역에 편입해 나갔는데 이는 북쪽에서 강국인 부여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북쪽 땅은 춥고 척박했으므로 비교적 기름진 서북한의 평안도, 황해도보다는 쓸모가 덜 했다. 때문에 후반기에 가서는 만주보다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한 나라로 변모했고 주요 3경 중 2개가 평안도, 황해도에 있었다. 수도들 또한, 졸본과 국내성은 중국령이라고는 하나 압록강과 거의 붙어있는 수준으로 가깝고 평양은 현재 북한의 수도다.또한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이질성이 있었다고 해도 연관이 없다고는 볼 수는 없고 연관은 있되 이질적인 집단이 정체성 융합을 통해 단일민족 집단이 되는건 흔한 일이다. 이러한 정체성 융합은 적어도 삼국시대 말기부터 시작해서 고려시대 중후반까지 진행되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중국은 오히려 한국보다도 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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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에서 백정은 왜 천한 취급을 받았던 건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정은 고려시대 화척(禾尺)이라고 불리는 무리였다. 수척(水尺)·양수척·무자리라고 불렸던 이들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화척으로 불렸다가 조선 초에는 백정(白丁)이라고 바뀌어 불렸다. 이들은 고려시대부터 악명 높은 범죄집단으로 떼지어 유랑하며 걸식, 강도, 방화, 살인 등 각종 범죄를 자행하였다. 고려 말의 홍건적 침입 때에는 길잡이 노릇을 하였으며, 왜구를 가장해 민가를 약탈하기도 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는 나라에서 화척을 비롯해 제주 사람과 재인을 모두 찾아내어 서북면 수졸(戍卒)로 충당하기도 하였다. 기골이 장대하고 싸움도 잘하니 달래고 집과 관직을 주며 정착하게 했지만 천성이 유랑자들이라 쉽지않았다는 문헌이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별도 거주지에서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관의 특별한 허락까지 필요한, 말 그대로 요주의 대상으로 천민보다 더 천한 이미지로 굳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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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궁예는 왜 왕건에게 왕을 뺏긴건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궁예는 재위 말년에 가혹한 폭정을 실시했는데 각종 전쟁과 후삼국의 정치를 겪으며 오늘날 의학적 개념으로는 편집성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병이 발병하였고 망상, 환각, 의심 등의 행동 이상이 악화되면서 무자비한 폭군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숙청에다 독선적인 정치 철학에 염증을 느낀 왕건의 역성혁명으로 축출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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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루가 24시간으로 구성이된것은 어느시대부터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원전 20세기 고대 이집트시절부터 이미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었는데, 달력의 역법에 근거하여 시간이 계산되었기 때문에 1년 12달, 360여 일, 1달 30여 일, 1 day 24시간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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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류가 화폐의 종류로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공식적인 최초의 지폐는 북송대의 교자로, 이는 당나라 시대에 사용되던 신용 어음인 비전을 이은 것입니다. 위조가 쉬운 만큼 상당한 신용을 필요로 하는 화폐의 종류이기 때문에 당시 중국의 상업이 얼마나 발전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로도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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