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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정현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전문가입니다.

한정현 전문가
부산예술고등학교
Q.  바둑은 언제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바둑의 유래는 대부분 고대의 전설에 의존하는 형편이며, 사실(史實)이 기록된 문헌도 드물다. 그러한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대 중국의 요(堯)·순(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다.중국의 고전 《박물지(博物誌)》에 실린 '요조위기 단주선지(堯造圍棋 丹朱善之)'라는 문구에 따르면 기원전 2300년전 요왕이 아들을 위해 바둑을 발명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그런가 하면 《설문(說文)》에는 기원전 2200년경 순왕이 우매한 아들에게 바둑을 만들어 가르쳤다고 밝히고 있으며, 《중흥서(中 興書)》에도 '요순이교우자야(堯舜以敎愚子也)'라는 글이 전해지고 있다.
Q.  건마국은 왜 마한의 주도권을 상실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적어도 BC 194년 위만조선 성립 당시에는 건마국이 마한 수장국이었음이 유력하다. 하지만 백제가 막 고대국가로 발돋움해서 낙랑군을 긴장하게 만드는 3세기 중반 시기엔 수장국 지위를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당동 일대를 중심으로 했던 목지국에게 빼앗긴 상태였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건마국의 준왕 직계 집단이 얼마 못가, 훗날 전방후원분으로 발전하는 주구묘제 및 토돈분구묘제 집단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것으로 고고학적으론 분석된다.
Q.  왜 고려 왕실은 근친혼을 했는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왕실 내에서 근친혼이 성행한 이유는 왕실 세력의 분열을 막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려의 태조 왕건과 왕실은 호족들에 맞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족끼리의 결혼하여 권력이 나뉘는 것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Q.  불교의 연등회와 팔관회는 무엇인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등회는 궁궐의 강안전과 봉은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연등회 자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봉은사 태조 진전에 왕이 친히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 고려에서는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태조의 위업이 재인식되었는데, 태조는 국민을 단합시킬 뿐만 아니라 왕의 권위에도 힘을 실어 주는 존재였다.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 진전에 재를 올리는 의식은 고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태조에 대한 신앙을 연등회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킨 것으로, 이를 통해 연등회 행사 자체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태조 진전에서의 행향이 끝나면 연회가 베풀어졌는데, 이 연회를 통해 왕과 신하 간의 상하 위계와 질서를 확인하고 군신 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다져 나갔다. 특히, 관등놀이를 하는 등석연(燈夕宴)은 연등회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연등회가 부처를 섬기는 순수한 불교적 성격이 강하였다면 하늘의 신령, 오악(五嶽),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을 함께 섬기는 팔관회는 전통 신앙의 모습이 두드러졌다. 팔관회는 대내외적인 성격을 통해 볼 때 고려의 국가 의례 중에서도 비중이 큰 행사였다. 연등회는 국기(國忌) 등의 이유로 설행 일자를 변경하기도 하였으나 팔관회는 국상(國喪)이 있을 경우 연희적(演戲的) 요소를 축소할 뿐 언제나 11월 보름에 변함없이 개최되었다. 연등회가 불교 의례이면서 군신동락(君臣同樂)의 축제적인 성격이 강하였다면 팔관회는 무엇보다도 국왕의 권위와 고려의 위상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국가 의례의 성격이 중요하였기 때문이었다.
Q.  이의방은 어떻게 정권을 잡았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170년 8월 무신정변이 일어났을 당시 이의방은 근위대의 대장에 해당하는 견룡행수(牽龍行首) 직위에 있었다. 견룡군은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호위하는 친위 부대로서 로마 제국 근위대 프라이토리아니의 예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이런 근위 부대의 경우, 왕실에서 정변을 일으키기 최적의 위치였다. 견룡행수(牽龍行首)는 그런 견룡군의 실병(實兵) 지휘 즉 실질적인 지휘를 맡아 직접 동원할 수 있는 병사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다. 견룡군은 직제상 2군(二軍)에 속했으나 왕의 직속 친위 부대로서, 견룡행수는 2군(二軍) 즉 응양군, 용호군의 상장군, 대장군이 아닌 임금에게 직접 지휘를 받았으며, 유사시에는 왕의 허락하에 타 부대에 대한 지휘권도 행사할 수 있을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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