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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유의 확장 예술 향유를 통해 인생폭을 넓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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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영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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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6일 작성 됨
Q.
이름을 적을때 빨간색으로 적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사람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면 안된다는 속설이 예전부터 들어왔습니다. 이는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니지만 일종의 미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런 속설이 전해 내려온 데에 몇가지 가설을 얘기해볼게요. 이는 중국 진나라 시절 중국사람은 빨간색을 워낙 좋아하고 복과 돈을 가져다 준다하여 즐겨 써오던 색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진시황시절 왕권의 위세를 위해 진시황제가 아닌 사람은 누구도 빨간색을 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를 어길시 목숨까지 처형당했답니다. 빨간색으로 쓰면 안된다는 소문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에까지 전해져 온것이 아닐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미신은 '선풍기 틀고 자면 죽은다'는 속설처럼 일종의 미신일 뿐이며 아무 영향도 없습니다하지만 이런 미신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인간들의 본능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로 와서는 미신이 일종의 징크스라고도 할수 있을것입니다. 어떤 운동선수는 본인이 정해놓은 루틴을 꼭 따라야 하고 중요한날은 내가 정해놓은 색깔의 속옷을 입는다던지요. 결국 미신을 신봉해서는 안되지만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규칙안에서 심리적인 안정을 얻기 위한 수단정도로 쓰면 유용할것 같네요 ^^
역사
2023년 3월 15일 작성 됨
Q.
조선시대 유교 사상이 들어오기 전에 장례문화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우리 조상님들의 장례문화는 어떠했을지 삼국시대를 살펴 보겠습니다.-고구려고구려 시대에는 삶과 죽음이 같은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고 죽고 나서도 육신이 존재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준비할것이 많았다고 생각했던 건지 결혼한 직후부터 죽음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마치 이집트왕이 왕위에 오르지마자 피라미드 무덤을 준비한것과 조금 비슷한 느낌이네요^^ 또한 장례식이 슬픈 분위기가 아닌 축제느낌이 더 강했다고 해요. 음악과 악기가 흐르고 춤을 추며 장례를 치뤘습니다. -신라신라시대는 순장이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왕 귀족같은 고위층이 장례를 치를때 노비나 가축을 함께 매장하는 악습이었지요. 그리고 상복입는 기간이 길었던 고구려 백제와 달리 1년간 상복을 입도록 하고 지증왕때 순장이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통일 신라때부터는 불교가 퍼지면서 화장을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백제 백제는 불교의 영향으로 장례때 화장을 한 후 뼈를 추려 매장하는 문화였고 남편 부모가 상을 당하면 3년의 기간동안 상복을 입었습니다.이후 조선시대에는 불교식 제를 금하고 유교의 영향을 받은 장례가 치뤄지게 되었지요.제 개인적으로는 고구려의 방식이 좋다고 여겨지네요^^
역사
2023년 3월 15일 작성 됨
Q.
카타콤이라는 게 옛날의 무덤을 말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카타콤이란 실제로 존재했었습니다. 2세기에 있었던 유대교, 유태인 종교가 박해당했던 때에 있었던 고대 지하 무덤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박해당한 무덤이라는것은 루머에 가까운걸로 알고 있고 기독교도들이 죽고 나서 사후 처리를 할때 부활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때문에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을 원하였습니다.하지만 당시 로마 성벽안쪽에 묻는것이 불가능해서 성벽 외부쪽에 바위 무덤같은 형식으로 묻혔다고 알고있습니다. 지상에 묘지를 둘 땅도 부족했고 금액적인 부담도 컸기때문에 지하를 깊게 파서 수천개의 무덤들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여러 게임과 컨텐츠에서도 차용하고 있는것 같네요 ^^
역사
2023년 3월 15일 작성 됨
Q.
헤밍웨이의 대표작은 무엇이고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헤밍웨이 작가의 풀 네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입니다. 54년도 노벨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인문학계에서 굉장이 유명하고 필독서로 알려진 작품이 있는 작가이지요. 헤밍웨이 작품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역시 [노인과 바다]일 것입니다. 이 노인과 바다로 플리처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외에도 단편소설의 대가로서의 지위 답게 '부인없는 남자들'과 '승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장편소설인 '무기여 잘 있거라'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전쟁문학의 걸작으로 평가 됩니다. 또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역시 앞선 장편 소설과 같이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헤밍웨이 작품의 특징이라 함은 소설가의 주인공이 시대상이 요구하는 인물을 탄생시켰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전쟁으로 용기가 사라져가는 암울하고 좌절의 시대였던 배경을 생각할때 헤밍웨이의 작중 인물들은 대중들에게 용기와 미덕을 제시하여 문학의 위대함을 인정받았습니다. 모두가 아는 노인과 바다를 볼때 천신만고 끝에 잡은 청새치를 집에 돌아오는 내내 상어에게 물어뜯겨 뼈만 남을때까지 사투를 벌이는 모습과 집에 돌아와 꿈속에서도 사자가 나오는 꿈에서 실패와 좌절에도 끝까지 싸우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2023년 3월 15일 작성 됨
Q.
숭례문은 옛날에 남대문인가요? 개선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숭례문의 명칭은 예전에 남대문으로 불렸답니다. 숭례문이 불에 탔었던 사건을 계기로 남대문의 명칭이 일제 강점기때 붙여졌던 이름이란 잘못된 루머가 퍼지면서 사람들이 남대문 대신 숭례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하지만 역사서를 볼때 조선시대부터 남대문이라고 불렀던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남대문 대신 각 방향의 대문에 인.의.예.지.하는 유교덕목들을 붙여 이름을 지은 숭례문이 더 의미가 깊어 널리 쓰이게 된것 같습니다.숭례는 인.의.예.지.중에서 예를 가져와 남: 예절을 높혀 숭상한다는 뜻으로 숭례문이라고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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