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홈답변 활동잉크

안녕하세요 사유의 확장 예술 향유를 통해 인생폭을 넓혀봐요

안녕하세요 사유의 확장 예술 향유를 통해 인생폭을 넓혀봐요

신현영 전문가
티핸즈
Q.  견훤은 직접 건국한 나라를 왜 무너뜨렸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견훤이 직접 스스로 나라를 무너뜨렸는지는 확실치 않은것 같습니다. 견훤은 후백제를 건국한 시조로, 후백제의 세력이 약화하면서 견훤의 국력도 약해졌습니다. 견훤은 후백제의 멸망을 막기 위해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왕건은 이를 거절하고 대신 후백제를 정벌했습니다. 이후 견훤은 금산사에 숨어있다가 사망하였습니다
Q.  국어의 계통과 역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어는 한국가에서 공용어로 인정되서 널리 사용하는 언어를 말하는데요.우리 국어의 역사는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국어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합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후로야 비로소 국어가 문자로 전면적으로 표기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500여 년간의 역사에 대해서만 자세히 알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밝히는 방법 중 하나는 고고학인데요 최근 고고학의 발전은 우리 민족의 선사시대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언어학도들은 언어의 선사를 밝히는 방법을 개발해 왔습니다. 이 방법은 비교 방법이라고도 불리며,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체계적으로 비교하여 그들이 예로부터 한 언어였음을 증명하고, 그 예로부터 각 언어의 변화 과정을 추정하는 방법입니다. [국어의 계통]국어의 이웃에는 국어의 자매라고 할 만한 언어가 없다.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는 누구에게나 곧 아주 닮은 자매라고 느껴지지만, 우리 국어의 경우에는 그런 언어가 없다. 여기에 국어의 계통연구가 부닥치는 기본적인 난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이것이 도리어 국어의 계통문제에 관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왔다고 할 수도 있다.19세기초에 언어의 비교방법이 발달된 것은 인도로부터 유럽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많은 언어들이 한 조상으로부터 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가능하였다. 이 언어들은 그뒤 인도게르만(Indogermanisch) 또는 인도유럽어족(Indo · Europe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언어들의 비교연구는 그뒤 고도의 정밀성을 띠게 되어, 그 언어들이 아직 분화되기 이전의 언어, 즉 조어(祖語)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도 밝히기에 이르렀다.이 어족의 연구에 자극되어 이 방법을 지구상의 여러 다른 지역의 언어들에도 적용해 보려는 시도가 잇따라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어족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는데, 인도유럽어족의 경우에 견줄 만큼 훌륭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언어의 비교연구에 적합한 조건으로 비교의 대상이 되는 언어들의 분화연대가 오래지 않거나(따라서 매우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거나), 조금 오래 되었더라도 그 언어들이 오랜 옛 자료를 갖추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인도유럽제어는 이런 조건을 제법 갖추고 있음에 대하여 다른 언어들은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이다.국어의 경우, 국어의 자매라고 느껴지는 언어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어와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는 언어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국어에 관한 고대 자료가 적다는 사실도 국어의 비교연구에 불리한 조건을 더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는 지금까지의 비교방법이 인도유럽제어의 연구를 중심으로 발전된 것이라는 데 있다. 이 방법을 인도유럽제어와 전혀 조건이 다른 언어들에 적용할 때 큰 무리가 따를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더구나 인도유럽제어의 비교연구에서 이룩된 사실들을 기준으로 해서, 그 기준에 도달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면 국어와 같은 경우에는 전혀 가망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래의 비교방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음운대응(音韻對應)의 체계이다. 엄격한 대응의 규칙에 의해서 이루어질 때에만 그 비교는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어떤 언어들에 음상과 의미가 비슷한 단어들이 있음을 확인했다 해도 그것으로 곧 이들이 동원어(同源語)임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음상에 적지않은 차이가 있더라도 그 언어들의 음운체계 사이의 대응관계가 면밀히 세워지고 그 규칙에 의해서 그들의 일치가 설명될 수 있을 때 이들은 동원어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음운변화의 규칙성이다. 한 조어에서 갈라져나온 언어들은 서로 다른 음운변화를 겪기는 했으나 그 각 변화에 있어서는 규칙성을 띠고 있으므로 그 언어들의 음운체계 사이에는 대응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그런데 조어로부터 갈라져나온 지 얼마되지 않는 언어들 사이에서는 음운변화의 층이 엷기 때문에 그 대응이 쉽게 확인될 수 있지만, 그 연대가 매우 오랜 언어들 사이에서는 워낙 그 변화의 층이 두꺼울 뿐만 아니라 우여곡절을 거쳤기 때문에, 그 대응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조차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비교방법은 조어로부터 갈라져 나온 연대가 오래일수록 적용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국어의 경우는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는 언어는 없으므로, 먼 친족관계에 있는 언어들이라도 찾아야 할 형편에 처하여 고민하여 왔다. 과거 1세기 남짓한 동안, 세계의 여러 언어와 국어의 비교가 시도된 사실이 이 고민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그 중에는 인도의 드라비다제어(Dravidian)나 위에 말한 인도유럽제어 등과 같이 어떤 학자에 의해서 비교가 한번 시도된 뒤 아주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도 있고, 알타이제어나 일본어와 같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거듭 시도되어 오랫동안 관심을 모아온 것도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국어의 알타이계통설이나 일본어와의 동계설이 널리 퍼져있다.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가설의 단계에서 증명의 단계에 도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일부의 학자는 증명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방면의 연구는 심각한 정돈상태(停頓狀態)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가로놓여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앞에서 지적한 방법론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국어와 알타이제어의 비교와 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에는 서로 다른 문제들이 있으므로, 이 둘을 한데 묶어서 보기보다 따로 떼어서 보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고 또 온당한 것으로 생각된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Q.  한국어의 사용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어와 한국어는 서로 완전히 다른 언어였기에 중국어를 쓰다 한국말을 쓰게 된것은 아닙니다. 중국과 한국은 서로 다른 국가이며, 각각의 국가에서 사용되는 공식 언어가 중국어와 한국어입니다..한국어는 아주 옛날 고대시대인 918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언어입니다. 한국어의 역사는 고대 한국어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삼국시대 신라의 몇몇 비문을 포함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고구려어 백제어 가야어 신라어가 서로 완전히 달랐는지 사투리 같은 개념이었는지는 완벽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그후 한글은 1446년에 음력9월29일에 세종대왕에 의해 창제되었습니다
Q.  고려시대 시무 28조 개혁안이 나오게 된 배경과 내용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 시무 28조 개혁안은 최승로가 고려시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시무 28조는 최승로가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정책서로, 고려시대의 정치개혁을 위해 성종에게 전달하기 위해 별도로 밀봉되어 전달되었습니다.시무 28조는 고려시대의 관료제도 개혁과 농민의 권리 보장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관료제도는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면이 많았으며, 이로 인해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최승로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관료제도의 혁신과 효율화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관료의 임명과 승진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능력과 충성심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관료의 부당한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감찰체제를 도입하고 직무상의 부패를 척결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대표적인 내용은 관료제도 개혁과 농민의 권리보장이었습니다.
Q.  고려장은 우리나라 역사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전해져오던 얘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고려장의 내용을 보면 늙고 쇠약해진 부모를 모시지못할때 산에 버리고 왔다고 하는 풍습이었는데요. 이는 날조된 역사이고 역사적 기록으로 봐도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일본자료에 의존하여 나온 말로 날조된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부터 유교사상이 나라를 지배했다는 것을 보면 고려장이란 풍습은 있을리 없습니다
5657585960
아하앤컴퍼니㈜
사업자 등록번호 : 144-81-25784사업자 정보확인대표자명 : 서한울
통신판매업신고 : 2019-서울강남-02231호개인정보보호책임 : 이희승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서비스 이용약관유료 서비스 이용약관채널톡 문의개인정보처리방침
© 2025 Ah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