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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문, 경제 전문가 손용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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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역사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유럽은 과거에도 정말 그릇을 들고 마시거나 먹는 문화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에서는 과거에도 그릇을 들고 마시거나 먹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도자기와 앤티크 그릇은 유럽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독일의 유명 도자기 마이센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로, 고가이고 구하기도 어려워 식기보다는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탄생 배경에는 중국 도자기에 대한 유럽의 매료가 있었습니다.
역사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광화문은 어떤 역할을 했던 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으로, 궁의 정문 기능을 하는 문이자 동시에 한국 역사에 깊이 뿌리를 내린 장소로 경복궁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역사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엘리자베스 1세의 업적은 어떻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1세의 종교 정책을 뒤집어 가톨릭과의 분리를 재천명하고 잉글랜드 국교회 가 안착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격파하고 이로써 영국을 세계 제일의 해양국가이자 유럽의 최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화폐 개혁을 통해 물가를 안정 시키고 사치품을 금지 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곡물과 가축 거래를 허가제로 바꾸었습니다.
미술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오귀스트 로댕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로댕의 주요 작품으로는 생각하는 사람 (The Thinker)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데 이 작품은 사색에 몰두한 사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우아하고 강인한 인물의 자세가 돋보기 라고 합니다.
역사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우리나라와 다르게 일본에서는 그릇을 들고 밥을 먹는 이유는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에서는 밥그릇을 놓고 먹으면 개처럼 고개를 숙이고 먹는다는 의미로 이누구이 (いぬぐい)라고 하여 예의에 어긋나게 본다고 합니다. 손으로 들 수 있는 작은 그릇은 들고 먹는 것이 기본 예절이며, 국물 또한 들어서 마시고 건더기는 젓가락을 사용하여 먹기 때문에 뜨겁지 않도록 대부분 나무로 만든 목기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역사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조선시대 우리나라 도자기 기술이 발전한 이유는 먼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귀족 적인 상감 청자를 선호했던 고려시대에 비해 조선 초기에는 여진족의 침입과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를 세우려는 새로운 무인 세력과 유학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왜구를 물리치며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제도를 바꿔가며 조선을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유학자들은 화려한 그릇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쓰일 수 있는 검소하고 실용적인 그릇을 원했던 것 입니다.
역사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공자가 흠집없는 조약돌보다 흠집있는 다이아몬드가 더 낫다는 명언을 남긴 게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자가 흠집없는 조약돌보다 흠집있는 다이아몬드가 더 낫다라는 말은 아마도 인터넷에서 와전 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원래의 말은 흠집 없는 돌보다 흠있는 옥이 더 났다라는 말이 와전 된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우리나라 역대 전쟁 중 가장 큰 전쟁은 어떤 거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전쟁 중 가장 큰 전쟁은 150만명의 사망자를 낸 6 25 전쟁 이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20만명의 사망자를 낸 임진 왜란 이라고 합니다.
역사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조선시대에 공무원에 월급은 어떤 식으로 받았고 현재와 비교해 어느정도에 금액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조선시대의 녹봉은 현금이 아닌 쌀로 지급되었고,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지급 방식과 액수가 변화하였습니다. 가장 높은 관직인 영의정은 1년에 약 100석의 쌀과 천 32필을 받았고 가장 낮은 관직은 14석의 쌀과 4필의 베를 받았다고 합니다. 쌀 100석은 지금으로 따지면 500가마니에 해당합니다. 이를 금전으로 환산하면, 쌀 일반미 한 가마니에 통상 20만원이니까 총 1억원 이 됩니다. 여기에 1필당 20만원인 베가격이 32필이면 1억1천 만원 정도의 연봉이 됩니다.
역사
2024년 4월 23일 작성 됨
Q.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속담이 사자 성어로 연결된 것은 아주 많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치 못한 것과 같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 논에만 물을 끓어 넣는다. 주마간산(走馬看山)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바라본다. 등이 전부다 속담이 사자 성어가 된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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